호박이 불러대는 '생명의 세레나데' [e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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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펑퍼짐하게 주저앉은 둥글둥글한 형체. 호박이 틀림없다. 그런데 말이다. 거죽에 입힌 외피는 영 다른 세상이 아닌가. 해와 달이 동쪽 서쪽 하늘에 나란히 걸리고, 구름 걸친 산은 물 만난 돌을 만나 서로 보듬는다.

박도희 ‘연가 25-9’(2025 사진=작가)

이뿐인가. 소나무에 내린 학, 거북을 만난 사슴까지 나섰다면 그곳이 맞는 거다. 십장생이 산다는 유토피아. 작가 박도희가 마음에 얹고 붓끝에 내린 이상향이라고 할까.

작가는 호박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펼쳐본다. 파내고 퍼줘도 여전히 넉넉한 성정을 모티프로 각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 사는 모습을 끌어안는 거다. 호박에 비춘 이 풍경에서 작가가 건져내려 한 것은 결국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크고 요란한 것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호박의 단맛처럼 조용히 깊어간다”고 했으니.

그중 십장생을 품은 장면에는 ‘연가 25-9’(2025)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호박이 불러대는 ‘사랑의 아리아’고 ‘생명의 세레나데’란 뜻이다.

그렇다고 ‘연가’로 이어가는 연작이 하늘처럼 높고 우주처럼 넓은 호박의 품만인 건 아니다. 때론 오브제처럼 놓여 전경을 만들기도, 때론 몸속을 파 꽃밭을 자처하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9월 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센터 부산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호박, 생의 연가를 품다’에서 볼 수 있다. 십장생을 소재로 그린 신작 회화작품 30여 점을 걸었다. 나무패널에 혼합재료. 116.8×91㎝. 작가 제공.

박도희 ‘연가 25-1’(2025), 나무패널에 혼합재료, 63×43㎝(사진=작가)
박도희 ‘연가 25-8’(2025), 나무패널에 혼합재료, 116.8×91㎝(사진=작가)
박도희 ‘연가 23-4’(2023), 나무패널에 혼합재료, 53×53㎝(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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