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는 ‘아름다운 항구 美港’를 가진 도시로 유명하다. 이뿐인가. 2023년에는 축구팀 S.C.C 나폴리가 자국 리그에서 33년 만에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25년에 또다시 우승컵을 들었다. 베수비오 화산의 돌로 만든 화덕에서 구운 피자는 이탈리아에서 그 맛이 으뜸이다. 유적지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나폴리 출신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신의 손>(2012) <그레이트 뷰티>(2014) 등을 통해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는 했다. 이번에는 나폴리의 옛 이름을 그대로 제목으로 가져와 영화로 만들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선정됐던 <파르테노페>다. 제목은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비너스의 탄생’을 생각나게 하듯 나폴리의 바다에서 뽀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태어난 파르테노페(셀레스트 달라 포르타)는 미와 사랑의 여신으로 남자들은 물론 동성과 노소(老少)에까지 관심을 받았다. 스무 살 시절에는 파르테노페를 찾아 그녀가 한 번이라도 알아봐 줄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남자 무리로 가득했다.
파르테노페는 자신을 향한 관심은 즐기면서도 쾌락에만 빠져 젊은 시절을 낭비할 생각이 없다. 사랑을 나누더라도 남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스릴을, 그럼으로써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하는 삶의 미스터리를 탐구하고 싶다. 계기가 있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자와 친오빠와 2대1의 사랑을 나누다 오빠가 자살해서다.
보통 파르테노페와 같은 신이 내린 외모의 여성이 등장하면 미와 사랑과 섹스 순으로 여성성을 탐구, 아니 소비하며 그 과정에서 자극적인 긴장감을 제공하는 게 장르의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와 달리 파올로 소렌티노는 파르테노페가 태어난 1950년부터 2023년의 현재 시점까지 그녀의 삶을 ‘서사시 epic’로 접근한다.
남성 서사시가 절대 권력을 차지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폭력의 양상이 중심에 서고, 여성이 주인공이면 그들을 둘러싼 차별에 맞선 투쟁이 테마인 경우가 많았다. 소렌티노는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장대하지만, 동시에 미적이고 영웅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오늘날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20대 초중반의 파르테노페는 사랑에 집중하되 젊은 남자, 나이 든 남자, 심지어 근친도 불사하고 오빠의 죽음 이후에는 인류학은 무엇인가, 삶의 미스터리를 풀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악마라고 해도 손색없을 이와의 육체적 결합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기 신체와 영혼과 마음을 최대한 활용해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 한다.
나폴리 바다처럼 세계를 향해 열린 자세를 가진 파르테노페는 오빠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 사고에서도, 인간 말종이라 평가받는 차기 교황과의 만남과 같은 기괴한 상황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같은 또 다른 면모를 찾으려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아름다운 바다를 눈으로 즐기기보다 깊은 물 속에 들어가 표면 그 너머, 즉 심연으로 나아간다.
삶의 심연은 노년이 되었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랑과 죽음과 같은 미스터리를 시간의 추적이라 할 수 있는 경험의 축적으로 어느 정도 풀이할 수 있어서다. 이제는 일흔세 살의 나이가 되어 존경받는 교수가 된 파르테노페는 지적 이미지와 원숙미가 물씬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미모와 젊음은 불꽃놀이와 같다는 것.
거창하게 정점을 찍은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사라지는 불꽃놀이는 꼭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듯하다. 그야말로 한 때다. 그 순간만큼은 황홀하거나 견디기 힘들 정도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현재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요소이었다. 그러니까, 삶은 밀려났다 실려 오기를 반복하는 파도처럼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성당 앞의 광장에 있던 파르테노페는 S.C.C 나폴리 축구팀의 우승을 기념하는 퍼레이드 차량이 지나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영광이 얼마나 지속할까, 암흑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을 하는 것만 같은 파르테노페의 표정은 과거형이 되어버린 삶의 미스터리를 맞이한 현재형의 해답이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늘 나폴리를 배경으로 지나간 가치를 테마로 현재를 긍정했다. 제목은 <유스>(2016)이지만, 열정을 잃은 노년의 지휘자가 무대 위에 서는 결말을 구성했다. <그레이트 뷰티>에서는 40년 넘게 다음 소설을 발표하지 못하는 65세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가장 아름다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일관된 주제와 테마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파르테노페>가 다른 건 여성이 극의 중심에 선다는 사실이다. 탐미주의자로 평가받는 소렌티노의 묘사는 여전해도 파르테노페를 미와 젊음의 여신으로만 제한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길을 걷지 않는 여성의 사연으로 서사시를 구성한다. 나폴리의 바다처럼 푸르고 예측 불가능하며 넓고 깊은 성정이 파르테노페에 그대로 담겨 있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영화 <파르테노페>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