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소판 분석으로 암 조기진단 혁신하는 포어텔마이헬스
혈액 내 암세포 DNA 조각 찾는 기존의 비싼 검진법 대체 기술 개발
고순도 혈소판 RNA 분리 기술과 생물정보학으로 암 조기 진단 새 지평
조기암 진단에서 기존 방식보다 탁월… “조기 발견 강점으로 시장 신뢰 얻을 것”
인류는 근래 액체 생체검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혈액이나 소변, 침 등 다양한 생체 유체를 분석해 암 발생의 신호를 찾는 방식이다.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세포의 유전자 조각을 직접 분석해 낼 정도로 바이오 기술이 발전한 덕이다. 문제는 누가 얼마나 경제적인 방식으로 더 정확하게 찾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유전자 조각을 직접 찾아 분석하는 식이어서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포어텔마이헬스는 혈액 속에 있는 혈소판을 분석해 암을 조기 진단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만들어 낸 스타트업이다. 현재 난소암을 진단하는 방식을 개발해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진단 기기는 상용화 기간이 짧아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즈음에 건강검진 항목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안태진 대표이사(47)는 “난소암은 조기 발견이 특히 어려운 암 중 하나여서 먼저 개발했다”며 “누구도 부담 없는 비용으로 암을 조기 검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 암을 조기에 발견하는 새 패러다임
혈액으로 암을 조기 발견하는 진단법을 상용화한 기업으로는 미국의 그레일(Grail)사가 있다. 몸속 어딘가에서 암세포가 생기면 면역세포가 암세포의 일부를 찾아 파괴하는 과정이 생긴다. 이때 분해된 암세포의 디옥시리보핵산(DNA) 조각을 혈액 속에서 찾아내 암을 진단한다. 20mL의 혈액 속에 불과 5∼10개로 존재하는 암세포의 DNA 조각(ctDNA·순환 종양 DNA)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싼 DNA 염기서열분석(시퀀싱) 장비가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120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1∼2기의 조기암 발견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포어텔마이헬스는 찾기 힘든 DNA 조각 대신 혈액 속에 적혈구 다음으로 많이 존재하는 혈소판에 주목했다. 암세포도 우리 몸속의 혈액을 이용한다. 암세포는 이 과정에서 혈액 속 혈소판의 리보핵산(RNA)에 변형시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포어텔마이헬스는 이 혈소판의 RNA에서 암의 발병 징후를 찾아낸다.● 혁신적인 진단 기술 개발
포어텔마이헬스의 핵심 경쟁력은 고순도 혈소판 분리 기술이다. 혈소판은 충격에 매우 민감해 분리가 어려운데, 1000번이 넘는 실험 끝에 최적의 분리 조건을 찾아냈다.
분리한 혈소판의 RNA를 분석해 난소암 환자의 경우 15군데에서 정상적인 서열이 아닌 것을 알아냈다. 또 각 부위는 난소암의 서로 다른 특징을 반영하는 독립적인 지표로 작용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여러 마커를 조합함으로써 진단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난소암 종양의 유무뿐만 아니라 그 종양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도 동시에 판결할 수 있는 배경이다.안 대표는 “혈액 6mL만 있으면 혈소판 RNA를 분석해 암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난소암의 발병 기전을 설명하고 여러 치료제의 저항성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자체 연구결과로, 난소암 조기 진단에서 암 환자를 암 환자로 판별하는 민감도는 93%, 정상인을 정상인으로 판별하는 특이도는 98%를 보였다”며 “1∼2기 조기암 발견에서 기존 ctDNA 방식 대비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했다. 포어텔마이헬스는 코로나19 사태로 전국에 이미 많이 보급돼 있는 PCR 장치를 기반으로 검사할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해 검사 비용을 5만∼10만 원대로 낮춰 보급할 계획이다.
● 삼성전자에서 생물정보학으로 암 연구
안 대표는 한동대 생명과학부 학사, 포항공대 분자생명과학부 석사를 거쳐 서울대 생물정보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생물정보학(생명정보학) 전문가다. 분자생물학과 정보기술을 결합해 암과 관련된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를 연구하는 분야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암과 관련한 연구를 했다. 체외진단 의료기기와 항암제 개발에 참여했고, 삼성병원과 협업 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다.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급 논문을 30여 편 발표했고, 특허를 약 50건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암을 연구하면서 환자의 생존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기술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창업을 했다.
안 대표는 “혈소판은 뭔가 생명활동에 유용한 물질을 품고 있다가 신호를 받으면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암세포는 이런 혈소판을 변조해 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성장인자를 내놓게 한다. 암이 생기면 먼저 나타나는 혈소판의 변조를 활용하면 암을 빨리 진단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었다”고 했다.이 회사는 현재 생명과학과 생물정보학, 컴퓨터과학 등 다학제적 전문성을 보유한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다. 안은용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서울대 약대를 나와 생물정보협동 과정에서 석사를 받고, 테크니온-이스라엘 공대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곽신영 최고제품개발책임자(CMO)는 서울대 약대를 나와 같은 대학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서 종양미세환경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 “건강검진 통해 11개 암 동시 진단이 목표”
안 대표는 자사 기술이 난소암 진단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 등 국내 주요 5개 병원과 함께 11개 암종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난소암을 첫 진단 분야로 정한 이유에 대해 안 대표는 “난소암은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한 암이다. 1∼2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0%에 달하지만, 3∼4기에는 20% 미만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증상이 없어 67%가 3기 이상에서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했다.
포어텔마이헬스는 난소암 조기 진단부터 시작해 내년에는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 내후년에는 유방암 진단법을 개발한 뒤 2028년에는 위암 폐암 간암 대장암 췌장암 담도암 갑상선암 등 총 11개 암종의 진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5년 후에는 11개 암을 한 번에 진달할 수 있는 통합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포어텔마이헬스는 지난해 12월 국내 스타트업 축제인 ‘컴업 2024’에서 스타트업 밸리 루키리그 최종 우승기업에 선정돼 올해 5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글로벌 스타트업 축제 비바테크 참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위험 요인이 없지는 않다. 그레일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DNA 염기서열분석 장비가 발달하면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침이나 소변 등을 검사해서 암을 진단하는 방법도 속속 나오고 있다. 안 대표는 “저가의 진단 도구가 더 필요한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먼저 진출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회사 이름 포어텔마이헬스는 ‘나의 건강을 미리 예견한다’는 의미다. 안 대표는 “사람들의 건강 위험을 미리 예측해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배운 ‘사업보국’이라는 말처럼, 기술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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