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에 본격 착수했지만, ‘경제 사령탑’의 공석으로 관련 논의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정부에서는 통상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리더십 부재 속에 협상의 방향 등 전략적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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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근 산업부 장관(사진=연합뉴스) |
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장성길 통상정책국장이 총괄하는 실무급 인사를 워싱턴 D.C.에 보내 미국 무역대표부(USTR) 측과 실무 작업반 구성 등 관세 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한미는 지난달 24일 개최된 고위급 ‘2+2 통상협의’에서 오는 7월 8일 협상 시한까지 ‘7월 패키지’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 협력 △통화·환율 정책 등 4개 분야로 의제를 좁힌 바 있다. 이 중에서 산업부는 환율을 제외한 3개 통상 분야 의제를 미국과 협의를 거쳐 다시 6∼7개 세부 의제로 나눠 작업반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한미 통상장관은 이를 바탕으로 오는 15~16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통상장관회의에서 2차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실무급에서 조율한 안건 내용을 검토한 뒤 최종 안건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통상 현안을 아우르는 의제에 대해 표준화된 협상의 틀인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한국을 비롯한 18개국과 관세 협상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관세와 할당량 △비관세 장벽 △디지털 무역 △제품 원산지 규정 △경제안보 및 기타 상업적 쟁점 등이 협상의 큰 범주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는 이 협상 틀에 따라 각국에 대한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할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막 관세 협상을 시작한 상황에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의 사퇴 여파로, ‘검토’ 이상의 진전을 내긴 어렵다는 관측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정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중요 쟁점이 아니더라도, 실무 협의 과정에서 방향 및 전략에 대해 수시로 의사 결정이 필요하지만 경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빠른 판단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어떤 의제를 먼저 논의할지부터 어떤 협상 카드를 제시할지 모든 과정이 다 전략 싸움”이라며 “이 과정에서 부총리 등의 의사 결정이 많이 개입되는데, 누가 당분간 이 역할을 맡을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유의미한 진전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환율 정책 협상은 더욱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환율은 양국 재무당국 간 별도로 논의할 예정인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입장에서는 협상 카운터파트가 사라진 셈이어서다.
6월 3일 대선 이후 협상에 속도를 낸다고 하더라도, 상호관세 유예기한까지 한 달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 ‘7월 패키지’ 도출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관세 협상 장기화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월 2.0%에서 지난달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성장률 전망치 1.8%·1.5%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여기에 현대경제연구원(0.7%)을 비롯해 한국투자증권(0.7%), 씨티그룹(0.6%), JP모건(0.5%) 등 0%대 성장률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관세 협상이 잘 되더라도 미중 관세 전쟁에 올해 경제 전망은 어두운 상황”이라며 “의제 하나하나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대선 이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최대한 실무적인 협상안 틀을 마련해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