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당국 통제 벗어나는 기업들…“제도 보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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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에,
기업 자가발전·직접구매 시도 확대
연내 분산특구서 판매시장 문 활짝
“원가 고려한 전기요금 산정 체계에,
민간 확대 대비한 송·배전요금 필요"

  • 등록 2025-05-07 오전 5:00:00

    수정 2025-05-07 오전 5:00:00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기업이 늘어난 요금 부담에 필요한 전력을 직접 만들거나 사오는 방식으로 정부와 공기업 한국전력(015760)공사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신·재생 발전사업 확대를 계기로 발전 분야에서의 민간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사실상 한전이 독점적으로 운영해 온 판매 분야에서도 균열이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장 개방을 추진하다가 중단된 현 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며 개편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SK 이어 LG화학도 ‘전력 직구’ 신청

6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달 당국에 전력 직접구매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당국이 이미 올 3월 SK가스의 자회사인 SK어드밴스드의 전력직접구매 신청을 승인한 만큼 이 역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전력 직접구매 제도는 김포공항 수준인 3만킬로볼트암페어(㎸A) 이상의 대량 전기 소비자가 한전을 거치지 않고 시장에서 전기를 사오는 방식이다. 정부가 2001년 전후 전력시장 개방을 추진하며 2003년 도입했으나 지금껏 시행되지 않다가, 지난해 SK어드밴스드의 신청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3년 새 산업용 전기요금이 70%가량 오르며 기업들이 ‘탈한전’에 나선 것이다. 기업으로선 제반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직접구매를 통해 전기요금을 낮출 유인이 생긴 상황이다. 전기요금은 2021년까지만 해도 1킬로와트시(㎾h)당 110원 안팎이었으나 이후 3년간 급격히 올라 올 1~2월 기준 173.6원이 됐다. 이 반면 전기의 원가 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은 2022년 196원/㎾h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 110원/㎾h대까지 떨어졌다. 실제 신청한 곳은 아직 두 곳뿐이지만 많은 기업이 이를 검토 중이다.

당국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전을 떠난 기업의 직접구매계약 최소 유지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계약기간 내 한전 고객으로 복귀하면 그 세 배만큼의 기간은 다시 이탈하지 못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기업이 한전과 직접구매 요금 상황에 따라 더 유리한 곳으로 오가는 상황은 막자는 취지다.

이들이 더 싼 방식을 찾아 한전 체제를 이탈하면 정부의 전력공급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3만㎸A 이상의 전기를 쓰는 기업은 500곳으로 2500만 전체 전기 소비자의 0.002%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전기 사용량은 전체의 29%에 이른다. 이들의 한전 이탈은 곧 개별 가정 고객의 비용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도 새로이 생겨난 제약에 관련 절차를 밟으면서도 실제 실행 여부는 고심 중으로 알려졌다. 기업 입장에선 당장 전기요금을 낮추는 게 시급한데, 반년 이상을 기다려 한전과 송·배전망 이용 계약을 맺어야 하고 그 이후 3년 이상의 직접구매 계약 유지가 더 유리하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전력을 직접 사더라도 기존 한전의 송·배전망은 이용해야 하므로 한전과의 협상은 필요하다. 또 한전은 첫 사례인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쳐 7개월 후에나 계약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력 직접구매제도 개요. (표=한국전력공사)

기업의 탈한전 움직임에 무너진 둑

기업의 탈한전 움직임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 위기 상황이던 2022년을 정점으로 하향 안정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전은 당시 원가 급증 부담에 부채가 205조원까지 불어난 상황이어서 한동안 전기요금 인하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력 다소비 대기업을 중심으로 아예 직접 발전소를 지으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현대제철(004020)은 이미 2028년 완공을 목표로 자체 가스발전소를 짓고 있고, 전체 전력수요의 80%를 자체 조달 중인 포스코 역시 자가발전 비율 확대를 검토 중이다.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역시 자가발전소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의 자가발전 비중은 2021년 4.2%에서 2022년 4.8%로 급증했는데,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구 포스코에너지)이 운영하는 인천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 전경. (사진=포스코인터)

여기에 전력 수요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송·배전망 구축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분산에너지 확대 역시 기업의 탈한전을 가속하는 요인이다. 정부는 지역 발전 전력을 같은 지역에서 사용하는 개념의 분산에너지 규모를 26기가와트(GW)에서 2038년까지 36GW로 늘린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 분산에너지법을 시행했다. 또 이 법에 따라 연내 지정되는 분산특구에선 한전을 거치지 않은 기업 간 전력 직접거래가 자유로워진다.

당국은 한전과 그 발전 자회사를 중심으로 발전량의 약 80%, 송·배전망의 약 99%, 판매의 95% 이상을 독점적으로 운영하며 시장과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통제해왔는데, 시장의 압력에 의해 그 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 민간기업이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 사업을 추진 중이란 걸 고려하면 발전 분야에서의 당국 통제력은 더 약화할 전망이다. 일부 민간 발전사들이 송전망 구축이 늦어져 전기를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전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벌써 민간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 판매시장이 열리며 (전력시장 개방의) 둑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전력 시장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든 제도 개편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21년째 애매하게 유지해 오던 현 체제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력시장 개방 방침에 따라 2001년 한전을 발전 자회사와 분리시키고 전력시장을 열었으나 3년 만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원가 부담을 고려한 전기요금 산정 체제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기업들이 최근 전력 직접구매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 정부가 민생 부담을 이유로 최근 2년간 주택용 요금은 동결한 채 산업용 요금만 올린 측면도 있다. 결과적으로 2020년까진 110원/㎾h으로 비슷하던 산업·주택용 요금은 올해 기준 산업용은 약 175원/㎾h, 주택용은 약 150원/㎾h으로 벌어졌다. 한전과 기업이 국제 에너지 위기에 따른 부담의 상당 부분을 떠안게 된 셈이다.

2022년 이후 용도별(산업·주택·일반) 전기요금 인상 현황. (표=한국전력공사)

민간참여 확대에 대비한 송·배전망 이용료 산정 기준도 정비해야 한다. 지금까진 한전이 각종 명목의 판매요금에 송·배전망 이용료를 포함해 온 만큼 이를 구분할 필요가 크지 않았다. 한전은 현재 송배전망 건설 비용을 토대로 평균 12.9원/㎾h(2021년 기준)을 부과하고 있는데, 주요 선진국 평균(76.3원/㎾h)의 6분의 1 수준이다.

유 교수는 “산업용 외 다른 전기요금도 원가 회수율이 100% 가도록 조정해 한전 재무구조가 더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송배전 요금 역시 분산특구 시행 초기엔 제도 활성화를 위해 좀 깎아주더라도, 전력 직접구매에 대해선 송배전망 구축 비용을 엄격히 산정해 (한전이) 받을 건 다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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