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이달 초부터 기관지염을 앓다가 14일 로마의 한 병원에 입원하면서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선종 직전에는 고용량 산소 치료를 받을 정도로 악화됐다. 교황 담당 주치의는 “교황이 자신의 위중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말했다”고 치료 도중 밝히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2세는 20세기 이후 재임한 역대 교황들과 비교하면 재임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가장 늦은 나이까지 재임했다. 같은 기간 전임자 중 가장 고령까지 재임했던 교황은 264대 교황으로 26년 5개월 이상 재임한 요한바오로 2세였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은 선종 당시 84세였다.
● 남미 출신 최초의 교황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36년 출생한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1282년 만에 유럽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2세 재임 전 마지막 비유럽 출신 교황은 서기 731~741년 재위한 90대 교황 그레고리오 3세(시리아)였다. 그 외에도 프란치스코 2세는 첫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자 첫 남반구 출신 교황으로 기록됐다.
교황 즉위 직전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맡았던 프란체스코 2세 (취임 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는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즉위할 때도 강력한 교황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었다.
특히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부패가 만연했던 아르헨티나에서 그는 서민들에게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철도 노동자 가정에서 1935년 태어난 교황은 1958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에도 아르헨티나 내부의 빈부 격차에 대해 진보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 왔다. 교황 즉위 전에는 특히 라틴아메리카 주교 모임에서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제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 즉위 직후에도 고국 신자들을 향해 즉위 미사에 오는 대신 그 비용을 자선단체에 기부해달라는 메시지를 내놨다.반면 성(性)윤리나 생명윤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보수적 관점을 유지해 왔다. 교황 즉위 전부터 낙태, 동성애 피임 등을 반대하는 가톨릭의 보수적 입장에 계속해서지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으로 있던 2010년에는 자국에서 동성애 혼인이 합법화되자 신자들을 향해 반대 운동을 할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비유럽권 출신으로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교회 내부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이 같은 행보가 교황 선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가톨릭계에서는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2세 즉위 당시인 2013년 교황청에는 개혁파와 반대파의 권력 투쟁이 심각한 상태였다. 사제의 성추문 사실이 밝혀지는 등 가톨릭계 전체가 홍역을 치르던 시기였다. 이에 교회 내부로는 본연의 종교적 역할을 강조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조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외부로는 빈부격차 해소와 기후변화 등 각종 진보적 이슈가 반향을 얻던 시류에서 프란치스코 2세의 목소리가 더욱 강조되었다는 해석이다.
● 한국 찾은 두 번째 교황
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요한바오로 2세에 이어 한국을 방문했던 두 번째 교황이기도 했다. 또 재임 중 한국 상황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교황은 2014년 8월 가톨릭 순교자 123인을 가톨릭 성인(聖人)의 바로 아랫단계인 복자(福者)로 지정하는 시복식을 거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전 교황의 한국 방문은 1984년 103위 순교자를 성인으로 지정하는 시성식을 거행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요한바오로 2세다. 요한바오로 2세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5년 후인 1989년 한 번 더 한국을 찾은 바 있다.프란치스코 2세 교황은 한국에서 집전한 시복 미사 때도 요한바오로 2세 때보다 제대(祭臺) 높이를 크게 낮추고, 의전 차량으로 준중형 차량을 택하면서 주목받았다. 당시 교황의 ‘소박한 성품’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교황은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방한 직전인 2014년 4월에는 교황 공식 SNS에 “한국 여객선 재난 피해자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방한 당시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이어졌던 각종 정치적 논란에도 교황의 방한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군림하지 않는 섬김의 리더십,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리더십은 국민들에게 각별한 공명을 얻었다”며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은 이 땅의 정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리더십의 전범(典範)”이라고 평했다.
● “거리로 나가라”
즉위 전 빈부격차 해소와 통합에 많은 메시지를 냈던 교황의 사회적 관심은 재임 중에도 이어졌다. 2014년 방한에 앞서 중동을 방문할 때는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을 먼저 방문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2016년에는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를 쿠바에서 만났다. 두 종파의 만남은 1054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2024년에는 88세 고령에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비롯한 동남아 4개국을 방문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이 때 교황은 기후변화에 대한 전 세계의 공동 대응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교황은 한 해 전인 2023년에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 직접 참석하려 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염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로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올해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워 왔다. 2016년 트럼프가 첫 대통령 당선이 되기 전부터 ‘멕시코 국경 장벽’을 주장하던 트럼프 당시 후보를 향해 “다리가 아닌 장벽을 세우는 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의 첫 대통령 취임 후에는 “가난 한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관심을 두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이달 11일 교황은 미국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이라는 진실이 아니라 힘에 기반한 조처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됐고, 결국 나쁜 결말을 맺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모든 이민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내용도 이 서한에 포함됐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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