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덕후’인 지인이 있다. 일요일 아침 8시, ‘디즈니 만화동산’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강산이 두세 번 바뀐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마음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디즈니 영화가 개봉하면 어김없이 챙겨 보고, 미키와 미니가 그려진 물건 앞에서는 좀처럼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단순한 추억을 넘어 마음에 차곡히 남은 감정의 흔적이자 켜켜이 간직해온 애정의 모습이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콘텐츠도 결국 누군가의 ‘좋아하는 감정’에서 시작된다. 그 감정이 오래 이어지려면 반복되는 경험과 쌓여가는 기억이 필요하다. 그렇게 축적된 감정은 브랜드를 향한 애정으로 이어지고, 함께한 시간은 관계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든다. 정서적 유대가 짙어진 브랜드는 내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어느새 나의 취향과 감성을 드러내는 언어가 돼간다.
출근길 에코백에 매단 귀여운 키링, 책상 위 캐릭터 머그컵, 주말 데이트 중 마주친 팝업스토어. 스크린을 넘어 삶으로 들어온 캐릭터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사소한 감정의 순간을 함께하며 크고 작은 경험을 우리와 함께 나눈다. 그렇게 마음을 나눈 시간이 겹겹이 쌓이며, 브랜드는 어느새 팬들의 감정 위에 자라난 하나의 공동 기억이 된다. 어쩌면 그 감정의 집합이야말로 브랜드를 지탱하는 팬덤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은 머무르고 싶은 세계를 만든다. 그래서 팬들은 때로는 스크린 너머의 공간에서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어 한다. 지난 어린이날 문을 연 ‘문도 픽사: 상상의 세계로’ 전시에서는 픽사의 세계관이 실제 공간으로 펼쳐졌다. 관람객은 기쁨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설리의 손을 잡으며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지난해 연말 열린 ‘디즈니 100주년 특별전’에서 팬들은 오래된 원화와 영상들이 담긴 전시 공간을 걸으며 디즈니와 함께한 저마다의 시간을 되짚는 경험을 했다. 영화와 함께했던 각자의 기억은 그곳에서 새로운 느낌으로 덧입혀졌고, 그것이 브랜드와 팬을 잇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됐다.
결국 마음에 남는 건 단순한 소비의 흔적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함께 만들어온 감정의 기억이다. 많은 사람에게 디즈니는 그런 기억들이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누적돼 만들어진 브랜드다. 이처럼 오래 가는 브랜드는 결국 좋아한다는 감정을 정성스레 축적한 결과이며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고, 취향이 되고,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오래 간직해온 수많은 이들의 시간이 쌓여 브랜드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된다. 그 ‘팬덤’은 결국 함께 감정을 나누고 기억을 이어가는 다정한 소통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텐츠 브랜드도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사람들의 삶 속에 의미 있는 한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단단한 팬덤과 변함없이 오래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