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황인찬]80년 만에 다시 울리는 나가사키 두 개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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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도쿄 특파원

황인찬 도쿄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은 올해 일본에선 이와 관련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참혹했던 당시 전쟁을 되돌아보며 다시는 그런 끔찍한 전쟁이 반복되지 않도록 종전의 의미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여러 사연 가운데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나가사키의 종 이야기였다.

日 ‘천주교 성지’, 원폭에 소실

일본 서남쪽에 있는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대표적 천주교 성지로 꼽힌다. 16세기 일본에 전파된 천주교는 나가사키를 중심으로 급성장했지만 동시에 에도 막부의 극심한 탄압도 받았다. 가톨릭을 믿는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신자들이 성모상 대신 불교의 관음상을 앞에 놓고 기도할 정도였다.

기나긴 박해를 이겨내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신자들은 1914년 나가사키에 우라카미(浦上) 천주당을 세운다. 당시 ‘동양 최대’ 성당으로 불릴 만큼 웅장한 규모였다. 26m 높이의 두 개의 탑 위에는 각각 종도 설치됐다.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는 두 개의 종이 동시에 울렸다고 한다.

그러던 1945년 8월 9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폭발 중심지에서 고작 500m 떨어져 있던 우라카미 천주당은 거의 괴멸되는 피해를 입었다. 남쪽 탑에 있던 큰 종은 기적적으로 잔해 속에서 발견돼 재건된 종탑에 다시 걸렸다. 하지만 북쪽 탑의 작은 종은 흔적도 없이 파괴됐다.

그런데 최근 소실됐던 작은 종이 복원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나가사키의 종 사연을 듣고 안타까워한 미국의 천주교 신자 등 500여 명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종을 복원한 것. 약 10만5000달러(약 1억5000만 원)가 모아졌고, 예전 종과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주조돼 지난달 15일 일본에서 공개 행사를 열었다.

나가사키 종의 복원을 이끈 것은 미국 월리엄스대의 제임스 놀런 주니어 교수다. 그의 할아버지는 미국의 원폭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그는 원폭 투하 후에는 조사단의 일원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찾기도 했다. 놀런 교수는 할아버지가 남긴 자료 등을 토대로 나가사키를 수차례 찾아 2022년 원폭과 관련된 책도 냈다. 그러던 중 피폭 피해자 2세인 모리우치 고지로 씨로부터 종의 복원 제안을 받았고, 취지에 공감해 모금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미군의 공격으로 소실됐던 종이 이렇게 미국인들의 손으로 복원돼 일본에 돌아왔다. 평화를 바라는 양국 국민들의 뜻이 한마음으로 연결된 사례일 것이다. 복원된 종은 일정 기간 전시를 거쳐 다시 종탑에 걸릴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정확히 80년 전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졌던 그 시각에 또 다른 종과 함께 다시 울릴 계획이다. 함께 울리는 두 종소리의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美가 日에 건넨 종, 평화의 상징으로

‘나가사키의 종’이란 책이 있다. 원폭이 떨어진 바로 그날 그 시각에 참화를 목격하고 이후 원폭 피해자 구호에 남은 인생을 헌신한 의사 나가이 다카시(永井隆·1908∼1951)가 원폭의 참상을 증언한 책이다. 피폭 후 극적으로 발견된 나가사키의 종 하나가 앞서 재건된 뒤 모습을 그는 이렇게 남겼다.

‘“데엥, 데엥, 데엥” 청명한 종소리가 평화를 축복하며 울려 퍼진다. 오랫동안 금지됐던 종소리가, 두 번 다시 멈추지 않겠다는 듯,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평화의 울림을 전하겠다는 듯 “데엥, 데엥, 데엥” 다시 울린다.’

이렇게 홀로 울렸던 종이 올여름엔 다른 종과 함께 울린다. 두 평화의 종소리가 나가사키를 넘어서 더 멀리멀리 닿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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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도쿄 특파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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