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전 8시 43분경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420여 명의 승객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리 준비한 시너통을 들고 탄 60대 남성이 바닥에 액체를 붓고 불을 붙이면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갔고, 승객들은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불이 빠르게 번졌다면 자칫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던 아찔한 장면이다.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테러나 다름없는 중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화재가 발생한 경위 자체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당시 신변을 비관한 방화범이 객차 안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고, 순식간에 열차가 화마에 휩싸여 192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번 방화범은 이혼 소송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3억3000만 원의 재산 피해와 함께 일부 승객이 경상을 입기는 했지만, 사망이나 중상은 한 명도 없었다. 기관사와 시민들이 차분하고 신속하게 대응한 덕이 컸다.
객차 내 비상전화로 화재 신고를 받은 기관사는 즉시 벽면에 비치된 소화기를 꺼내 승객들과 함께 화재 진압에 나섰다.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 추가 진화 작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승객들은 비상 개폐장치를 이용해 열차 문을 연 뒤 노약자를 챙기며 질서정연하게 선로를 따라 대피했다. 수백 명이 컴컴한 터널을 빠져나왔는데도 그 과정에서 다친 사람이 없었던 이유다. ‘5호선의 기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대구 참사 이후 전국 지하철 열차의 바닥재, 의자 등을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교체한 것도 피해를 줄이는 데 역할을 했다. 대구 지하철 방화 당시 가연성 열차 내장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이 번졌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열차 일부만 소실되고 그을음 피해가 발생하는 정도에 그쳤다. 다른 재해·재난에 대한 대비도 다르지 않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배운 대로 침착하게 대처한다는 평범한 원칙을 실천으로 옮기면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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