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정오께 서울 마포구 소재의 유명 냉면집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30m가 훌쩍 넘는 긴 줄이 늘어섰다. 대기줄은 매장을 지나 옆 골목으로 이어질 정도로 길었다. 33도에 육박하는 찜통더위에도 고객들은 양산을 펴거나 손으로 부채질하며 각자의 차례를 기다렸다.
고물가 속 외식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유명 맛집 앞은 여전히 긴 줄로 붐빈다. 이들 식당은 냉면 한 그릇이 1만6000원, 삼계탕 1인분이 2만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교적 가격대가 높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줄을 서며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단순히 음식의 맛보다도 그 전후의 경험이 소비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날이 치솟는 외식 물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116.52(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외식 물가도 3.2% 오르며 물가 부담이 한층 커졌다.
실제 외식 물가는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 냉면 한 그릇의 평균 가격은 지난 6월 1만2269원에서 지난달 1만2423원으로 한달 새 154원 올랐다. 삼계탕 가격도 같은 기간 1만7654원에서 1만7923원으로 269원 인상됐다.
과거 추이를 보면 냉면 한 그릇 평균 가격은 2022년 4월 1만원, 2023년 6월 1만1000원을 기록하더니 작년 12월에는 1만2000원선을 넘어섰다. 삼계탕 역시 2022년 1만5000원, 2023년 1만6000원, 지난해 1만7000원을 돌파하며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높은 가격에도 붐비는 맛집
하지만 유명 맛집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들 식당의 메뉴 가격은 평균보다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냉면 맛집으로 알려진 을밀대는 냉면 한 그릇 가격이 1만6000원, 필동면옥과 남포면옥도 각 1만5000원에 달한다. 콩국수로 유명한 진주회관도 한 그릇 가격이 1만6000원이며 삼계탕 맛집으로 꼽히는 3대삼계장인, 고려삼계탕도 삼계탕 1인분을 각 1만9500원 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예약 시스템이 없어 직접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먹을 수 있는 곳들도 있다.
비싸도 좋아…‘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
이들 맛집의 공통점은 세계적 미식 평가 안내서인 ‘미쉐린 가이드’에 오르거나 자자체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선정한 오래가게, 백년가게 등에 꼽혔다는 점이다. 이는 해당 식당만의 역사와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직접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고물가 상황에서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특히 인스타, 블로그, 유튜브 등 온라인 평판이 강하게 작동하는 요즘 시대에는 맛이 평균 이상만 되면 ‘유명한 곳을 경험했다’는 만족감이 가격 부담을 상쇄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식당의 오랜 전통과 역사가 소비자들에게 경험적 가치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제 인스타그램에서는 해당 맛집과 관련된 해시태그가 적게는 2~3만에서 많게는 10만회를 넘는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20대)는 “물가가 많이 올라서 어디든 다 비싼데 차라리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유명한 곳에서 제대로 경험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라며 “SNS에 올리면 그게 또 나만의 기록이 되기도 하니까 비싸도 소비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경험’이 소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발전하고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면서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가 커진 데에서 이 같은 소비 행태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현대의 생활 기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은 자신과 사회의 정체성, 역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된다”라며 “선진국이나 경제 발전이 잘 된 곳일수록 경험과 스토리가 있는 소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