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교육청이 개발사업자에게 요구해온 기부채납을 공개 지적하고 나섰다. 그동안 관행에 따라 지급해온 과도한 기부채납을 더는 납부할 수 없단 것이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과도한 요구에 일부 기준이 완화됐지만, 건설업계는 기존 대책으론 현장 관행을 개선할 수 없단 입장이다.
“기부채납 관행 바꿔야”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한주택건설협회는 교육청이 개발사업자에게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관행을 바꿔 달라며 교육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주택건설사업자는 사업계획승인 신청 전에 관할 교육청과 학생 배정을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교육청 협의서를 제출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 사실상 교육청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단 게 업계의 설명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측은 “학령인구를 수용할 학급이 인근 학교에 부족하면 학급을 증축하거나 학교를 신설하게 된다”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 부대시설 설치나 추가 토지매입 등으로 법정 학교용지 부담금 산정금액 초과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경북의 1000가구 규모 사업장에선 부담해야 하는 학교용지 부담금이 63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실제 납부된 기부채납은 115억원에 달했다. 115억원이 납부되고 나서야 교육청 협의서를 받아 사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전 지역의 개발사업장은 법정부담금 33억원의 10배가 넘는 450억원을 납부하고 나서야 협의서를 받을 수 있었다.
교육청의 요구와 실제 학령인구 수요가 달라 학교 시설이 낭비되는 경우도 있다. 경기 이천시 백사지구는 1861가구를 지으면서 교육청이 초등학생 400명, 중학생 168명이 입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기부채납을 요구하며 초등학교 18학급, 중학교 8학급을 증축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입주가 시작되자 실제 유입된 초등학생은 30명, 중학생은 10명이었다. 큰돈을 들여 증축한 학급이 빈 교실로 남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지적에 다음 달부터 학교용지 부담금 부과 요율은 현행 0.8%에서 0.4%로 완화될 예정이다. 부과 대상 역시 100가구 이상에서 300가구 이상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는 대책이 부족하단 입장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정된 기부채납 이상을 요구해야 사업을 승인하는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고 했다.
‘초품아’ 했다가 재건축 복병 된 1기 신도시
재건축 과정에서도 학교가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본격적인 재건축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선 단지의 장점이었던 학교가 재건축을 방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아파트와 함께 재건축하게 될 학교 위치를 놓고 주민과 교육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아파트의 층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학교의 일조권에 영향을 주게 된다. 대부분 1기 신도시 대단지는 단지 중앙에 학교를 품고 있다. 과거 ‘초품아’로 불리며 인기를 끌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자리에서 학교와 아파트를 재건축하게 되면 학생들의 일조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선 정비계획에 교육환경평가 내용을 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경기교육청은 ‘최소 4시간 또는 연속 2시간 이상, 체육장은 최소 2시간 또는 연속 1시간 이상 일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일조권 규칙을 두고 있는데, 상당수 재건축 추진 단지가 기존 위치에선 일조권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주민들은 학교를 단지 외곽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교육청의 입장은 다르다. 통학수요와 통학거리 등을 감안하면 단지 중앙에 학교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분양 양지마을의 경우, 학교를 단지 중앙에 배치했을 때 학교 주변 아파트의 층수가 23층에서 9층으로 줄여야 한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층수가 낮아지는 만큼 일반분양 가구 수가 줄고 그만큼 조합원 분담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교육청의 승인이 재건축 사업에 필수이기 때문에 결국 교육청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를 단지 중앙에 두고 있는 재건축 단지는 사업성이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