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위에서 전쟁 재현하던 ‘모두의 놀이’… 이제 놀이를 닮아가는 전쟁[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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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이어진 보드게임, 장기 사산 왕조의 호스로 1세(재위 531∼579년)에게 차투랑가를 소개하는 전승을 그린 14세기 그림. 차투랑가는 실크로드를 타고 흘러와 한반도의 장기가 됐다. 사진 출처 위피키디아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최근 몇 년간 전쟁의 양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후방 벙커에 앉은 병사가 모니터를 보며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순간 수천 km 밖에서 사람이 쓰러지고 건물이 폭파된다. 이 낯선 풍경은 수천 년간 사람들이 판 위에 전쟁을 재현하는 보드게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장기라면 흔히 동네 어귀 평상에서 노인들이 두는 한가로운 놀이를 떠올린다. 그러나 장기는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진영이 마주 서고, 최전선의 졸 뒤로 차(車)와 포(砲), 마(馬)와 상(象)이 포진해 적의 왕을 노리는 게임이다. 서양의 체스도 있다. 체스판에서 따로 궁성은 없지만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양옆에 비숍, 기사, 성채가 늘어서는 기본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인도 차투랑가에서 유래된 장기 전남광주 순천시 전통민속마을에 등장한 초대형 장기판. 사진 출처 동아일보DB 장기와 체스는 주사위와 같은 요행수나 숨겨진 말과 같은 변수가 없다. 모든 말은 상대방에게 공개됐으니 오로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이러한 장기의 기본 원리는 전장의 모든 요소를 저울질해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휘관의 처지와 정확히 겹친다. 인도와 페르시아, 중세 유럽, 중국에서 이 놀이는 왕족과 귀족, 장수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전쟁의 원리를 몸으로 익힐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재였기 때문이다. 장기와 체스의 뿌리는 같으니, 바로 고대 인도의 차투랑가에서 유래했다. 차투랑가는 ‘네 부대’라는 뜻으로 군대를 이루는 보병, 기병, 코끼리 부대, 전차 부대를 가리킨다. 각 말의 움직임은 병종에 따라 달라지니 보병은 앞으로만 나아가고, 기병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전차는 직선으로 강력하게 돌파한다. 서로 수싸움을 해 네 병종을 유기적으로 이용하면서 전술적 균형 감각을 자연스레 익히는 방식이다. 차투랑가는 실크로드를 타고 약 6∼7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로 유입됐고, 이후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갔다. 인도에서 발달한 불교가 동아시아로 퍼져 나가듯 차투랑가 역시 상인의 낙타 등과 순례자의 봇짐에 실려 실크로드를 따라 흘렀다. 이후 중국의 샹치(象棋)를 거쳐 한반도의 장기가 됐다. 하나의 뿌리에서 뻗은 두 큰 가지가 유라시아의 동과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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