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뒤통수에 7조 날리더니…루이비통家 '초비상'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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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백화점의 루이비통 매장. 사진=최혁 기자

국내 한 백화점의 루이비통 매장. 사진=최혁 기자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자신의 자산 중 50억달러(약 7조2600억원)를 날렸다. 1980년대 뉴욕에서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 오랜 관계를 맺어 온 아르노 회장은 지난 1월 취임식 당시 트럼프 대통령 가족 지근거리에 자리 잡고 앉을 정도로 친분을 과시해 왔다. 그랬던 그가 글로벌 관세 전쟁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드라이브가 본격화하면서 큰 손실을 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 여파로 위기를 맞은 것은 아르노 회장 개인뿐만이 아니다. 아르노 회장이 운영하는 명품 그룹도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됐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 부과를 시작하자 유럽연합(EU)이 즉각 260억유로(약 41조원)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나서면서다.

미국의 주요 산업계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기회 삼아 해외 수입품 관세 부과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이에 명품업계도 관세 부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그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선 관세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명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한다.

가격 인상 카드 '만지작'…전방위 로비 활동도

13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주요 명품 제조사들은 미국이 관세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주요 업체들은 관세 관련 비용이 증가할 경우 마진이 줄어들 것에 대비해 가격 인상 카드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의 한 백화점 에르메스 매장 앞.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백화점 에르메스 매장 앞. 사진=연합뉴스

이미 하이엔드 명품업체인 에르메스나 세계 최대 명품기업인 케어링그룹은 추가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가격 인상이 실효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 밝혔다. 악셀 뒤마 에르메스 최고경영자(CEO)는 4분기 실적 발표 후 "관세가 인상되면 그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케어링의 프랑수아앙리 피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도 구찌·발렌시아가·생로랑 등 자사 브랜드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그들의) 가격 책정 전략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방위적인 로비 활동에도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유럽 명품 산업이 무역 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세 부과 대상에서 LVMH 제품을 제외하려 하고 있다. WSJ은 “아르노 회장은 32세의 둘째 아들 알렉산드를 LVMH의 핵심 직책에 배치해 트럼프 및 그 가족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알렉산드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친구 사이다.

아르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활용해 관세를 피한 선례가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였던 지난 2019년 유럽 항공기·치즈·와인 등에 75억달러 규모의 관세가 부과됐을 때 명품 가방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해당 결정이 발표되기 하루 전 아르노 회장은 텍사스주로 달려가 이 지역에 설립한 루이비통 공장 개소식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참석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가방 제품이 관세 대상에서 빠진 이유를 묻는 말에 “아르노가 미국으로 왔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19년 텍사스주 루이비통 공장 개소식에 함께 참석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2019년 텍사스주 루이비통 공장 개소식에 함께 참석한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이번에도 아르노 회장은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고 공공연히 강조한다. 현재 LVMH는 미국 전역에서 14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명품 산업 특성상 생산 라인의 미국 이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 명품 제품은 고유한 제조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내에서 제작되기 때문이다.

다만 명품업체들은 아르노 회장의 인맥이 이번에도 관세로부터 업계를 지켜낼지 기대하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서 피노 케어링 회장은 ‘아르노의 미국 내 로비 활동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유럽 명품 부문이 추가 관세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확실히 좋은 일’”이라고 답변했다.

"가격 많이 올리기는 어려울 것"

일각에선 관세 부과가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가격 인상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년간 공격적인 가격 조정이 이뤄진 탓에 추가로 인상할 여지가 적다는 게 그 이유다. 샤넬의 클래식 플랩 백은 2010년 이후 가격이 세 배 이상 뛰었으며, 디올의 레이디 백과 루이비통 키폴 트래블 백은 두 배 이상 올랐다.

서울의 한 명품관 앞.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명품관 앞. 사진=연합뉴스

얼라이언스번스타인, UBS, 씨티그룹 등도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최근 몇 년 동안 가격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올리면서 수요 감소에 직면하면서 보수적인 가격 정책을 펼치는 기조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모닝스타는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 명품에 대한 10~20%의 관세는 버버리와 케어링 등 초부유층 고객보다는 중산층의 열성적인 명품 수요자에 타깃 하는 브랜드의 명품 판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명품업체들이 미국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가격 인상을 억제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베인앤컴퍼니의 분석을 보면 유럽의 명품업체들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총 3630억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중 22% 수준인 800억유로를 미국에서 올렸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며, 최근 중국의 명품 소비가 급감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도가 높은 지역이다.

주요 명품 기업들의 미국 판매 비중. 자료=로이터

주요 명품 기업들의 미국 판매 비중. 자료=로이터

가격 민감도가 높은 미국 소비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인상 속도를 최대한 늦출 것이라는 게 투자업계의 설명이다. 미국 내에서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 글로벌 주요 국가의 가격 정책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들은 차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전 세계 제품 가격을 동일하게 조정하기 때문이다. 시장정보회사 데이터 앤 데이터는 “샤넬, 디올, 루이비통 등 주요 브랜드들이 대부분 인상 폭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올해도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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