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죽신’ 이은 ‘얼죽재’ 열풍… 마포·성동·강동·동작·광진구 ‘풍선효과’ 우려도
35일 만에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번복
3월 19일 오후 부동산시장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전한 현장 분위기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날 오전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강남3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3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서울 4개 자치구에 있는 아파트 약 2200단지, 약 40만 채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게 뼈대다. 2월 12일 서울시가 해당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한 지 35일 만이다. 이에 따라 3월 24일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피하려면 하루 전인 23일까지 계약을 마쳐야 한다. 강남3구·용산구의 상급지 아파트로 갈아타려고 기존 집을 처분한 경우 이 기간에 새집을 계약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구(區) 단위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사상 처음이다. 2월 서울시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후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들썩이자 나온 초강수다. 앞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5년여 만에 풀린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을 중심으로 신고가 행렬이 이어졌다. 이 같은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유지된 이 일대 재건축 아파트로 옮겨붙었다. 매입자가 직접 입주해 살면서 추후 재건축을 기다리는 ‘몸테크’ 수요가 유입된 것이다.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발표 전까지 마포·성동 등 서울 다른 지역에서도 집값이 들썩여 부동산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였다.
3월 19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 직후 기자가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상가에선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이 하나 둘 가게 문을 열고 있었다.
3월 8일부터 이날까지 해당 상가에 입주한 공인중개사 대부분이 사무실 문을 닫은 터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송파구 부동산시장은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를 팔고 잠실주공5단지, 잠실우성 1∼4차, 잠실장미 1∼3차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맞물려 달아올랐다. 이에 따라 준공 10년 초과~30년 이하 아파트와 재건축 추진 단지를 막론하고 신고가 행렬이 이어졌다. 가령 잠실주공5단지 전용면적 76㎡(34평형)는 3월 4일 32억700만 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일부 집주인은 호가를 37억 원까지 올려 불렀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와 송파구, 세무서 관계자들이 단속을 나오자 공인중개사들이 일종의 ‘철시’를 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방금 지인이 ‘송파를 비롯해 강남권 전체가 다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다고 한다’고 연락해와 사무실 문을 다시 열려고 나왔다”며 “이제 다시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실시된다고 하니 단속 나올 일도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지난달(2월)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가 풀린 후 송파 안에서 헬리오시티, 엘리트를 팔고 재건축 단지로 갈아타는 수요가 많았는데 이제 당분간 손님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기자가 찾은 강남구 대치동 일대에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에 따른 집값 상승 열기가 남아 있었다. 거래 건수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준공 10년 이하 신축은 물론,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 신고가 행진이 이어진 것이다. 최근 부동산시장 트렌드로 자리 잡은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의 준말) 열풍에 이어 미래 신축 단지로 탈바꿈할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얼죽재(‘얼어 죽어도 재건축’의 준말) 기대감으로 풀이된다. 대치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에 따르면 아직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받는 단계라서 실거래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31평형)가 31억 원,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114㎡(45평형)가 60억 원에 거래됐다. 현재까지 해당 단지들의 같은 평형 최고가는 각각 29억3000만 원, 52억9000만 원이다. 일부 집주인은 매입 희망자가 포털사이트 등에 등록된 호가를 보고 연락해오자 집값을 수억 원 올렸다고도 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3월 들어서도 개포우성 1·2차, 선경 1·2차 등 재건축 아파트 매입 문의 전화가 적잖다”며 “집주인들이 집값 상승 기대감에 호가를 계속 올려 잡아서 예금잔액증명서 등을 확인해 진짜 매입 의향이 있는 경우에만 집을 보여주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사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풀렸다가 다시 묶이는 사이 신고가에 집을 판 사람만 노가 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오락가락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를 우려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향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마포·성동·강동·동작·광진구 아파트 가격이 뛰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강남 권역 재건축 단지들이 ‘애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상황이니 도리어 호재 아니냐’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다시 들썩일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재지정에 대해 “지난 20년간 나온 부동산 규제 중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아파트 공급 물량이 부족한 가운데 최근 금리인하 분위기로 시장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쏠리고 있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재지정과 별개로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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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81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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