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상까지 눈앞에… 뉴욕-런던 주름잡는 K뮤지컬

20 hours ago 4

‘어쩌면 해피엔딩’ 10개부문 후보에
‘위대한 개츠비’ 美-英서 흥행하고
‘마리 퀴리’ 웨스트엔드 장기 공연
대형 쇼뮤지컬과 다른 서정성 통해… K팝-드라마 넘어 뮤지컬로 확장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기세가 파죽지세다. 최근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와 드라마리그어워즈에서 작품상을 잇달아 수상한 데 이어, 다음 달 8일(현지 시간) 열릴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연출·각본·음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공연계의 영화 ‘기생충’이 될 수 있단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상 시엔 한국에서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는 최초 기록이 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K뮤지컬이 세계 시장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단기 공연이나 투자 참여를 넘어, 한국 창작자와 프로듀서가 현지 제작 시스템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보편적 서정성’ 가진 K뮤지컬

지난해 11월 미국 맨해튼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인간을 돕는 ‘헬퍼봇’들의 사랑을 그리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다음 달 토니상 수상 여부가 주목된다. NHN링크 제공

지난해 11월 미국 맨해튼 벨라스코 극장에서 개막한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인간을 돕는 ‘헬퍼봇’들의 사랑을 그리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은 다음 달 토니상 수상 여부가 주목된다. NHN링크 제공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 작가와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이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기획돼 2016년 서울 대학로 300석 규모 소극장에서 초연됐다.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에게 버려진 헬퍼봇들의 사랑과 여정을 그린다. 참신한 설정과 섬세한 정서로 국내에서도 호평받았다.

해외 진출은 2016년 뉴욕에서 열린 쇼케이스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미국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에게 발탁되며 브로드웨이 계약이 성사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벨라스코 극장에서 오픈런(폐막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시 공연)으로 개막했다. 최근 2주 연속 티켓 매출이 100만 달러를 돌파하며 흥행에서도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우란문화재단 프로듀서로서 이 작품 개발에 참여한 김유철 라이브러리컴퍼니 본부장은 “처음부터 브로드웨이를 겨냥하진 않았지만, 창작자 두 명 모두 뉴욕이 기반이었던 만큼 영어 개발도 병행했다”며 “쇼뮤지컬과는 다른 보편적인 감정과 서정성이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간 것 같다”고 말했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소규모 극이 더 각광받게 됐다”고 말했다.

● 美英 진출한 ‘위대한 개츠비’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선보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선보인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 오디컴퍼니 제공
미국 브로드웨이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한국 뮤지컬은 1997년 뉴욕 링컨센터에 올랐던 ‘명성황후’다. 이후 안중근 의사의 생애 마지막 1년을 담은 뮤지컬 ‘영웅’이 2011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다. 그러나 일회성이었고, 관객 상당수는 교포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K뮤지컬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는 지난해 4월 아시아인 최초의 단독 리드 프로듀서로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를 정식 개막한 데 이어 지난달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도 올렸다. 신 대표는 “현재 미국에서 오픈런으로 공연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영국도 9월 이후 극장을 옮겨 계속 공연할 계획”이라며 “현지에선 한국 뮤지컬 제작자가 프로듀싱했다는 것에 놀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을 한 뮤지컬 ‘마리 퀴리’. 라이브 제공

지난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을 한 뮤지컬 ‘마리 퀴리’. 라이브 제공
토종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 역시 지난해 런던의 채링크로스 시어터에 영어판 장기 공연을 올리며 웨스트엔드에 공식 진입했다.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는 “한국 공연을 단순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현지 산업 구조 안에 편입돼 상업적 성과를 냈다”고 했다.

이런 경향을 두고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K팝과 드라마, 영화로 축적된 한국 문화에 대한 신뢰가 뮤지컬이라는 복합 예술 장르로 확장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병성 공연 평론가는 “영미권을 공략하기 위해선 현지 시장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의 경우 마니아 중심의 팬덤을 넘어선 보편적인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