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금기어였던 ‘억까’의 세월, 돌아보니 아일릿은 그저 웃지요

7 hours ago 4

사진|KBS ‘민주의 핑크 캐비닛’ 캡처

사진|KBS ‘민주의 핑크 캐비닛’ 캡처

최애 음식으로 칼국수를 골랐다고, 다리 부상 여파로 목발을 짚은 채 무대에 섰다고 이유 불문 ‘욕받이’가 된 걸그룹이 있었다. 멤버 셋이 이제 갓 스물, 둘은 여전히 10대 미성년인 ‘아일릿’이 데뷔 첫해였던 지난해 ‘실제’ 겪었던 일들이다.

요즘 세대 언어를 빌려 ‘억까’가 시작된 시기도 아일릿 경우 극히 이례적으로 정확히 셈할 수 있다. 2024년 4월25일.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육두문자 기자회견이 있던 날이다.

당시 기자회견은 기존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비속어들의 향연, 그로 인해 ‘어리둥절’이었다가 이내 소위 ‘대신 까 드림’으로 요약되는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낳았다. 밤낮 없이 일한 죄밖에 없다는 여성이, 하이브의 “개저씨들”을 상대로 “맞다이”를 제안하니 유쾌·통쾌했던 걸까. ‘국힙 원탑’(대한민국 힙합의 최정상)이란 찬가까지 나왔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민희진이 쏟아낸 감정적 화법은 ‘진심’으로 포장됐고,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 등 이른바 뉴진스 사태를 둘러싸고 정작 짚어봐야 할 이슈들은 ‘봉인’됐다. 도리어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신인 걸그룹이 뉴진스를 표절했느냐, 아니냐는 논란만 남는 ‘수상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민희진 전 대표는 당시 데뷔한 지 꼭 한 달 된 신예 그룹 아일릿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이로 인해 1개월 차 그룹 아일릿은 ‘뉴진스 아류’ 또는 ‘표절 그룹’이란 멍에를 썼다. 이들 소속사 빌리프랩의 주장대로 ‘좌표’가 찍혔다. 실제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아일릿은 터무니없는 각종 ‘억까’에 시달렸다.

마름모 모양의 손가락 하트 자세도 아일릿이 하면 표절이 됐다.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칼국수를 골랐다가 뉴진스 특정 멤버를 저격했다고 공격받았다.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출연을 두고선 당시 뉴진스 복귀 시기에 의도적 활동 방해를 한 것 아닌가란 억측에도 휘말렸다. 한 멤버가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무대에 섰더니 밑도 끝도 없이 ‘뉴진스 따라 한 것 아니냐?’ 심지어 ‘쇼 하지 마!’란 독한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아일릿을 향한 비난은 이들 매니저에게도 향했다. 국정감사에조차 소환된, 이른바 “무시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직장 내 따돌림 이슈로 부각된, 뉴진스 멤버 5인의 전속계약 해지 사유 가운데 하나로도 제시된 이런 주장은 이제 와선 국정감사의 성과가 아닌 ‘그땐 그랬지’급 ‘웃픈(웃기고도 슬픈) 해프닝’의 실례로 남아버렸다.

해당 이슈는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와 멤버5인 사이 진행 중인 전속계약 유효 확인의 소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뉴진스 멤버 5인의 법률대리인이 제출한 증거 자료를 참조하면, ‘무시해’ 논란을 촉발한 뉴진스 멤버 하니가 “정확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쓴 민 전 대표와의 카톡 대화 내용도 발견되긴 한다.

애초 아일릿이 뉴진스를 표절했다는 민 전 대표 측 주장의 근거도 ‘타임라인’ 상 논란의 여지는 있다. 민 전 대표가 문제 삼았던 아일릿의 키워드와 콘셉트는 2023년 4~7월 작성된 문서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반면, 아일릿 소속사 빌리프랩에 ‘공유’됐다는 뉴진스 기획안 경우 2023년 8월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이브 내부 리포트에 사용된 “뉴아르 버리고 새 판 짜면 될 일”이란 문구는 2023년 5월 작성됐다. 민희진과 뉴진스 측은 이 ‘뉴아르’를 뉴진스, 아일릿, 르세라핌으로 해석해 전속계약 해지의 근거로 삼은 바 있다. 2023년 5월로 시점을 맞춰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이 뉴아르란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을 뜻함을 여러 매체 기사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브는 타사 소속의 경쟁 그룹 게다가 아일릿의 데뷔 시점은 2024년 3월이다.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후 지난 1년을 되짚어보는 이런저런 후기에서 짚을 만한데 지적되지 않는 게 있다.

‘베꼈어, 무시해, 뉴아르!’ 지나가는 행인1을 붙잡고 ‘민 전 대표 사태 하면 떠오르는 것은?’이라 묻는다면 1, 2, 3위를 차지할 만한 이 단어들 ‘다 누구를 향해’ 있는가.

사진|KBS ‘민주의 핑크 캐비닛’ 캡처

사진|KBS ‘민주의 핑크 캐비닛’ 캡처

때마침 1주년 ‘아일릿 근황’과 관련 화제의 영상이 있다. 일명 ‘아일릿 눈치’ 클립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으로, 질문도 ‘자막’도 참 독했다. ‘그러면 1년 동안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자막은 이랬다. ‘순간 당황’ ‘눈치’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맘고생의 나날들.’

아일릿의 대응이다. 쑥스러움 묻어나는 미소 속 ‘누군가는 수습해야 해!’로 읽히는 멤버들 간 아이 콘택트가 빠르게 이어졌다. 잠시나마 숙연해지는 게 누가 봐도 ‘헛웃음’이 난다.

지난 1년이 어땠냐고? 그건 멤버 원희의 대답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연습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만큼 자랐다.

허민녕 기자 mign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