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아빠의 몸속에도 ‘양육 호르몬’… 부성애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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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중 남성의 신체 반응 탐구
울음 듣자 모유 분비 호르몬 늘고, 아기와 놀이 후엔 옥시토신 증가
동성 커플 사이 양육 환경에선 어미 포유류의 뇌 활동 활성화
수컷이 양육하는 고릴라 사례도
◇아버지의 시간/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김민욱 옮김/542쪽·2만6000원·에이도스

오랫동안 모성 본능에 대한 통념을 깨기 위해 노력해 온 저자는 신간에서 “남성도 양육에 대한 본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사위 데이비드가 10개월 된 아기와 노는 모습. 데이비드는 미국 뉴욕의 한 공립학교 부교장으로, 아내 대신 아기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냈다. 에이도스 제공

오랫동안 모성 본능에 대한 통념을 깨기 위해 노력해 온 저자는 신간에서 “남성도 양육에 대한 본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사위 데이비드가 10개월 된 아기와 노는 모습. 데이비드는 미국 뉴욕의 한 공립학교 부교장으로, 아내 대신 아기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냈다. 에이도스 제공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의 이론에 따르면 육아는 ‘어머니의 일’이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남성보다 상냥하고 이기심이 덜하다. 이 때문에 남성은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여성은 최상의 유전자를 가진 수컷의 자녀를 낳아 양육에 집중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기도 했지만, 요즘엔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자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들도 훨씬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런 남성들은 본능을 거스르고 있는 것일까.

책 ‘아버지의 시간’에 따르면 답은 ‘아니요’다. 이 책은 “남성에게도 양육에 대한 본능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모성 연구자인 저자는 ‘남성들의 양육’으로 관심사를 넓혔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것은 단지 성 역할의 사회문화적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책은 생후 1000일 전후의 영아와 아버지의 관계를 다루면서 남성 양육 감정의 기원을 탐구한다.

첫 손주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자와 그의 남편.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아이와 함께 친밀한 시간을 보내면 ‘엄마처럼’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 에이도스 제공

첫 손주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자와 그의 남편.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도 아이와 함께 친밀한 시간을 보내면 ‘엄마처럼’ 옥시토신 분비가 증가한다. 에이도스 제공
흥미로운 점은 아기를 돌보는 남성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곧 아기가 태어날 아빠에게 신생아가 덮던 담요로 감싼 아기 인형을 안게 하고, 녹음된 신생아 울음소리를 들려줬다. 그랬더니 남성들의 프로락틴(포유류 암컷의 모유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 수치는 상승하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하락했다. 아기와의 놀이 시간을 가진 아빠가 애착 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 분비가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여성이 배제된 ‘남성 커플’ 간의 양육에 대한 자연 실험은 통념을 뒤집는다. 동성 커플 사이에선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버지가 이성 부모보다 따뜻하게 자녀와 상호 작용한다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뇌 편도체와 시상하부를 포함한 ‘감정 처리 네트워크’가 활성화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네트워크는 그동안 포유류 ‘어머니’가 아기의 안전을 유지하도록 발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자는 “남성과 여성은 성 염색체를 제외하면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각 성별은 서로에게 발견되는 특성을 표현할 수 있는 동일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영장류 수컷이 제 아이를 돌보는 경우도 있다. 르완다의 비릉가 화산 고지대에 사는 산악고릴라는 우두머리 수컷 ‘실버백’이 새끼를 돌본다. 어미와 함께 실버백을 따르는 새끼들은 그의 보호를 받는다. 50여 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두 살에서 여덟 살 사이에 어미를 잃은 산악고릴라 새끼 고릴라 59마리는 수컷의 보살핌 덕에 어미가 있는 새끼 고릴라와 동일한 생존율을 보였다.세계적으로 결혼 연령이 늦어지며 출산이 늦어지는 현상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보조 생식 기술로 태어난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잉태된 아이들보다 더 나은 양육 환경에서 자라날 가능성이 높다. 대체로 부모들이 간절히 원해서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육에 대한 법적, 개인적, 정치적 관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보살핌”이라며 “아이에게 함께 살며 보살핌을 제공하면 모두 가족”이라고 분명히 한다.

오늘날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로 남녀 간의 ‘육아 분담’은 대체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동시에 ‘남성적 본능’을 근거로 이에 반발하는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책은 자연에 기대 남성의 육아 참여를 등한시하는 게으른 통념을 시원하게 무너뜨린다. 저자의 경험과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제시한 “남성도 매우 세심하고 부드러운 보살핌을 수행할 수 있다”는 통찰은 현대 사회에 또 다른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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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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