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에의 욕망[내가 만난 명문장/이예지]

1 day ago 6

이예지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저자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이창동 감독 ‘가능한 사랑’ 중 영화 오프닝에 선언처럼 등장하는 문구다. 구약의 십계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반대 방향으로 저항하듯 나아간다. 먼저 해고 노동자인 호석(설경구)의 꾹 닫은 침묵 속 트라우마와 눈물을 탐하는 유학파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를 보라. 그들의 상처를 다큐에 담고 싶은 예지에겐 호석의 아내 미옥(전도연)의 눅눅한 가난마저도 탐스럽다. 모진 풍파 속 순연히 빛나는 미옥에게 끌리는 기업가이자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계급 호석과 미옥은 어떤가? 미옥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상우 부부의 전용 해변에서 상우를 도발한다. 호석은 상담가, 동료, 아내에게도 감췄던 내밀한 고통을 예지 앞에서 털어놓는다. 이들의 아들 철이는 상우의 별장에서 호루라기를 훔쳐온다. 각자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며 그 어떤 ‘가능성’을 가늠하고 시험한다. 계급을 가로지르며 활주하는 욕망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게 정말 나쁘기만 한 일인가? 남의 것을 탐하고, 열망하고, 침범해 마침내 남과 조금이나마 지근거리에 서 보고자 하는 일. 사랑은 결국 저마다의 선을 넘어 서로를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침범에의 욕망은 사랑의 다른 말일 터다. 여기서 이창동 감독은 묻는다. 그토록 다른 자리에 있는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각자의 집에 돌아간 이들은 서로가 침식한 경계를 추스르며 다시 주어진 선 위에 선다. 그런데도 어쩌면 달은 저리도 눈부시게 환한가? 누구에게라도 공평하게 주어지는 풍경, 밤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달을 비추는 역설의 카메라 앞에서. 이예지 ‘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저자©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