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호박’, 상처 입은 ‘영웅’… 그림값 너머 역사의 무게[양정무의 미술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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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마 야요이의 ‘호박’(2015년). 크고 작은 물방울무늬가 호박의 둥근 몸체를 따라 화면을 채운다. 사진 출처 서울옥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패전국 日-獨미술의 역사 인식일본 현대미술에 투자하는 게 좋을까, 독일 현대미술에 투자하는 게 더 좋을까. 두 나라를 대표하는 거장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는 8월 97세로, 독일의 게오르크 바젤리츠는 4월 88세로 생을 마쳤다. 앞으로 누구의 그림값이 더 오를까. 미술사학자인 나는 먼저 두 작가가 자신의 시대와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물방울무늬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 사진 출처 아사히신문 현재 한국 시장의 관심은 일본 현대미술에 쏠려 있다. 올해 3월 31일 서울옥션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Nothing about It’이 150억 원에, 구사마의 ‘호박’이 104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국내 미술 경매에서 처음으로 100억 원을 돌파한 두 작품이 나란히 최고가 1, 2위를 차지했다. 1929년생인 구사마는 열 살 무렵부터 물방울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방탕과 어머니의 학대 속에서 자란 그는 온 세상이 점으로 뒤덮이는 환각에 시달렸고, 그 고통을 다스리기 위해 미술에 매진했다. 보수적인 일본 화단을 피해 1957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73년 귀국했다. 1977년부터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인근 작업실을 오갔고,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며 국제적 위상을 굳혔다. 점 같은 붓질로 화면을 채우는 ‘무한망’, 거울 속 공간이 끝없이 증식하는 ‘무한 거울방’, 물방울무늬를 뒤집어쓴 ‘호박’이 그의 작품세계를 이룬다. 호박의 둥근 몸체를 따라 크고 작은 점이 흐르면 소박한 채소가 낯선 생명체처럼 변한다. 멀리서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고, 가까이에서는 반복이 만드는 시각적 긴장을 발견한다. 바젤리츠의 작품도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 180만 유로(약 29억 원)에 팔렸다. 다만 일본 스타 작가들의 친숙한 이미지와 달리 그의 거칠고 불편한 그림은 관객에게 더 많은 설명과 시간을 요구한다.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붉은 깃발과 함께’(1965년). 해진 옷을 입고 맨발로 선 인물과 늘어진 붉은 깃발은 승리자의 위엄과 거리가 멀다. 사진 출처 소더비 해외 경매 기록에서 두 작가의 가격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구사마의 1959년 작 ‘무제―무한망’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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