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싶은 외국인들이 계좌 하나도 마음대로 못 만들어요.”
16일 경기 성남시 리벨리온 본사에서 열린 ‘국회 유니콘팜×코리아스타트업포럼’ 현장간담회. 스타트업 업체를 대표해 참석한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는 현장에 모인 국회의원들에게 ‘규제 장벽’에 대해 절규하듯이 말했다.
서울로보틱스는 세계적 완성차 회사인 BMW와 자율주행 기술 관련 협업을 하고 있는 유망 스타트업이다. 외국 자본이 선뜻 투자를 선택할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회사의 질주를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모국의 ‘규제 지뢰’다. 이 대표 말대로 외국인은 비상장 기업 등 한국 회사에 투자하려고 하면 반드시 증권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문제는 대면 개설이 필수라는 점이다. 필요한 서류만 50여 장에 달한다. 이 모든 지난한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6개월이다.
이 대표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던 다른 창업가는 “외국인에게 달러로 투자받는 것도 언감생심”이라고 거들었다. 외국 자본이 한국 기업에 투자하려면 반드시 달러를 원화로 바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 막판에는 각자에게 유리한 환율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웃지 못할 눈치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규제에 대한 국내 창업가들의 고충은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300여 개 스타트업의 64.3%가 “국내 규제로 사업에 제약이 있다”고 답했다.
겨우 투자를 받고 나면 덩치가 조금 커졌다는 이유로 질시 속에 추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풍토 역시 고질병으로 지적된다.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리벨리온은 지난해 시장 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들에게 “이젠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데 정부 지원과 규제 해소가 필요하냐”고 묻는다고 한다. 이때마다 리벨리온 관계자들은 “우리의 상대는 시가총액 5800조원의 엔비디아”라고 힘줘 말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시선 때문에 창업가들은 스타트업을 ‘기업’이 아니라 단지 시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닌지 깊이 고민한다고 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역시 창업가들의 고충에 공감했다.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만드는 무선사업부(현 MX사업부)를 총괄했던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창업 환경이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 비대면 증권계좌 개설이나 달러 투자는 외환당국 입장에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이 호소하는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의지가 있느냐다. 공감은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은 해결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