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의 단골 소재인 심청이 보여주는 희생적 효의 서사는 이제 그 공감 폭마저 넓지 않다. 다행히 이번에 국립창극단이 새롭게 무대에 올린 창극 ‘심청’은 전통적 메시지를 전복해 새로운 해석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했다. 연출가는 아버지 심봉사를 넘어서 심청과 관객의 눈을 뜨게 해줬다.
이미 정해진 음악과 대사를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 창극은 오페라와 닮았다. 작품은 본래 틀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세계 오페라 무대는 이 틀을 해체하며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왔다.
연극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는 ‘니벨룽의 반지’에 24개 패널로 구성된 거대한 모듈러 세트를 도입하고 무대 기계 자체를 드라마의 축으로 삼아 오페라의 표현 지평을 넓혔다. 익숙한 결말의 오페라 작품으로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 오페라는 오랜 세월 작곡가와 성악가 중심의 예술로 여겨져 왔지만, 시각적 연출과 스토리텔링의 힘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이른바 ‘연출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창극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대 들어 독일의 오페라 무대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를 비롯해 한태숙 등 연극 연출가들이 국립창극단 무대에 합류하면서 창극은 전통 판소리의 단순한 극화에서 벗어나 현대 무대예술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고 이번 심청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영상, 설치미술, 라이브 카메라 등 새로운 표현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요나 킴이 그려낸 심청은 더 이상 수난을 겪다가 기연으로 환생하는 설화적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도록 강요당한 수많은 여성을 상징하는 집단적 존재로 재현했다. 심봉사를 비롯해 심청을 둘러싼 온갖 군상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통해 그 희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마지막에 심청은 무대 뒤로 퇴장하지 않는다. 무대를 넘고 객석을 지나 극장 밖의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심청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영상은 심청이 더 이상 희생의 굴레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눈을 뜨며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주체적 결단을 상징한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전복적 해석이 판소리 원형의 음악과 대사를 거의 바꾸지 않은 채 오직 상징적 소품, 강렬한 이미지, 영상 등 ‘연출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눈을 뜬 건 심봉사가 아니라 심청이었다. 그리고 관객이었다. 효와 희생의 전형을 넘어 눈을 뜬 주체로서의 심청을 재발견한 연출가의 시도는 전통에 대한 관객의 눈도 새롭게 뜰 수 있게 했다. 이번 무대는 전통이 과거의 그림자로 머물지 않고 현재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자유롭게 변주되며 그 힘을 유지해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나아가 한국 전통 공연이 질적으로 변화하고 양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 하나를 제시했다.
관객 입장에서 바라는 것은 요나 킴의 이런 시도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판소리 다섯 마당 전체를 아우르는 장기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면 하는 점이다. 흥보가,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 등 작품마다 덧입혀질 해석이 꽤나 흥미진진할 것 같다. 이런 작업은 국립창극단이 전통의 재해석을 넘어서 세계 무대와 함께 호흡하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공연작품의 하나로 창극을 확장해 갈 계기로도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