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약사-한약사 충돌 방관하는 정부

1 day ago 4

[취재수첩] 약사-한약사 충돌 방관하는 정부

“약사와 한약사의 업무 범위에 관한 세부 사항은 법제처에 문의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8일 한약사의 일반의약품 판매와 관련해 “약사법상 한약제제와 그 외 의약품의 구분이 모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가 한약사의 일반·전문의약품 판매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데 대한 언급이었다.

약사회는 지난 16일 한약사들이 무자격으로 일반의약품을 조제하고 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한약사회도 17일 동아대병원 인근 한약사 개설 약국 앞에서 “한약사는 모든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다”며 시위를 벌였다. 18일엔 양측 모두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릴레이 시위에 나섰다.

이번 갈등은 이달 초 경기 고양시에 한약사가 개설한 창고형 약국에 제약·유통업체가 의약품 공급을 보류하면서 불거졌다. ‘저가 대량판매’를 내세운 창고형 약국 시장에 한약사까지 뛰어들자 약사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해당 한약사 약국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며 대응에 나섰다.

약사회와 한약사회의 입장은 다르지만, 30년간 사실상 갈등을 방치해 온 복지부의 책임이 크다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한다. 한약사 제도가 1993년 한약 분업과 함께 도입될 당시 복지부가 한약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사법 제2조에서 약사는 ‘한약에 관한 사항 외의 약사(藥事)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 한약사는 ‘한약과 한약제제에 관한 약사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 명확히 구분된다. 반면 약사법 20조와 50조는 약사와 한약사 모두를 약국 개설자로 규정하면서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주체로 적시했다.

복지부가 법제처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까닭이다. 문제는 법제처 해석이 나오더라도 행정부 내부에서만 구속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약사회나 한약사회가 해석에 불복해 소송을 걸면 법원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간 약사와 한약사의 면허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약사법 개정안이 여러 번 발의됐지만, 복지부는 번번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사이 직역 갈등은 커져만 갔다. 임채윤 한약사회 회장은 이날 시위 현장에서 “이번 시위는 양 직능이 힘을 합쳐 정부에 한약사 제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동시위라고 생각한다”고 성토했다.

복지부는 이제라도 한약사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방관한다면 의료 현장의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약사와 한약사들이 약국을 떠나 대통령실과 공정위, 경찰서를 전전한다면 결국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