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 기업 잘나가네”
경기장 사이드라인 전광판에는 익숙한 국내 기업 로고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방송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최첨단 광고 시스템이 숨어 있다.같은 시간 미국 시청자는 미국 기업 광고를, 유럽 시청자는 유럽 기업 광고를 보고 있다.
● 하나의 전광판에 여러 나라 광고경기장에 설치된 LED 전광판은 겉보기에는 하나뿐이다. 현장 관중도 하나의 전광판만 바라본다. 그런데 TV 중계 화면에서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광고가 송출된다.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가상 광고 교체(Virtual Ad Replacement)’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기술이 적용되지만, 핵심은 전광판의 초고속 물리학과 카메라 기술의 결합에 있다.
일반 TV가 초당 60장의 화면(60FPS)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경기장 전광판은 초당 240장의 화면(240FPS)을 송출할 수 있다.
이 속도를 활용해 전광판은 미국 광고, 유럽 광고, 아시아 광고 등을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갈아 출력한다.
각국의 중계 카메라는 240장 중에 자신에게 배정된 특정 프레임만 읽어낸다.
하나의 전광판에서 여러 광고가 동시에 송출되고 있지만, 국가별 시청자는 자신에게 맞는 광고만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과 TV로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전광판 화면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4개의 광고가 섞여서 빠르게 깜빡이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는 전광판의 광고 문구가 겹쳐 보이거나 흐릿한 잔상(블러)으로 보일 수 있다.
반면 안방 시청자들은 마치 그 광고만 단독으로 송출된 것처럼 아주 선명하고 깨끗한 광고 이미지를 보게 된다.● 전광판 아예 없어도 가능
최근에는 전광판 자체를 활용하지 않는 방식도 쓰인다.
중계 시스템이 경기장의 잔디 선, 골대, 터치라인 등 고정된 위치를 인식한 뒤 그 위에 디지털 광고를 합성하는 ‘가상 오버레이(Virtual Overlay)’ 기술이다.
실제 경기장에는 단순한 배경이나 빈 전광판만 있어도 방송 화면에서는 자연스럽게 전광판 광고가 보이게된다.
카메라가 움직여도 광고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따라다녀 일반 시청자는 합성 여부를 거의 알아채기 어렵다.
● 광고 한 자리로 수익은 몇 배
이처럼 복잡한 기술을 사용하는 이유는 타깃 마케팅을 통한 수익창출의 극대화다.
하나의 물리적인 전광판 공간을 여러 국가에 동시에 판매할 수 있어 중계권자와 주최 측은 광고 수익을 4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유럽 시청자에게는 유럽 기업 광고를, 아시아 시청자에게는 아시아 브랜드를, 국가별 언어와 문화에 맞는 맞춤형 광고를 노출하니 효과가 크게 높아진다.
이 사실을 안 다음 부터는 중계방송에 익숙한 국내 기업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 미국에 있는 내 친구는 무슨 광고를 보고 있을까?”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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