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들이 항로를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우회시키고 있다.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 상승이 연일 상승하고 있어서다. 유럽은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 조치 이후 천연가스 재고가 평년 대비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인 데다가 겨울을 앞두고 있어 가격은 더 뛸 것으로 예상된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상품 데이터 회사 ICIS의 분석 결과 이달에 최소 일곱 척의 미국발 LNG 화물선이 원래 경로에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선박 중 6척은 원래 아시아를 향해 가고 있었고, 1척은 콜롬비아로 향하고 있었지만 모두 유럽 항구로 경로를 바꿨다. 알렉스 프로리 ICIS LNG 시장 분석가는 “이처럼 많은 경로 변경과 명백한 방향 전환이 나타나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경로 변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가스 수급이 불안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천연가스 저장량은 러우 전쟁이 시작한 2022년 이후 빠르게 감소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 가격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는 이날 ㎿h당 49.12유로를 기록했다. 이틀 전인 21일에는 50유로를 넘겨 2023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FT는 “아시아에서는 천연가스 수요가 낮고 가격도 낮다”며 “아시아로 LNG 선박을 보내는 것보다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 수익성을 확대할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현물 LNG 가격은 최근 2주 연속 하락했다. 아시아에서 LNG 가격은 100만Btu당 14달러 수준으로 연초 이후 5% 떨어졌다. 2023년 11월부터 줄곧 10달러~13달러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의 운송을 허용하는 5년 계약은 지난해 12월 31일로 만료됐다. 유럽은 러시아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지만,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겨울 한파가 이어지면서 선박 등을 통한 가스 공급에 수요가 몰린 상태다. 유럽연합(EU)의 가스 저장량은 20일 기준 59%로 전년 동기 대비 15% 낮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 가스 공급 중단으로 유럽의 LNG 수입이 전년 대비 15%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겨우내 가스 저장량이 바닥을 보이면 유럽은 이 재고를 다시 채우기 위해 여름철 더 높은 가스 가격을 지불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컨설팅 업체 에너지 애스펙트는 유럽의 가스 재고가 3월 말까지 전체 저장 용량의 약 35%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회사의 유럽 가스 및 글로벌 LNG 책임자 제임스 와델은 “글로벌 LNG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미국에서 수출이 지연되거나 아시아에서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면 유럽의 가스 재고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