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예창작과 학생이 바이오헬스 공부에 빠지다
이지현 학생은 학교에서 개설한 바이오헬스 분야의 기초, 전문, 심화 과정, 현장 실습 과목을 차례로 수강했다. 일주일 가운데 4일은 일반 수강 과목을 듣고 금요일에 바이오헬스 과목 강의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학기 학점이 4.0이 넘어 추가 수강을 할 수 있었는데, 이것도 바이오헬스 분야로 채웠다.
이 과목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상명대, 홍익대, 대전대, 우송대, 동의대, 원광보건대 등 다른 학생들과 같이 강의를 듣는다는 것이다. 통합 클라우드 기반의 학습관리시스템에서 프로젝트도 같이 하고, 실습도 함께 한다.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소통과정을 배우는 것이다.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비교하고, 나중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공유한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도 다른 대학 학생들의 발표와 과제 등을 통해 깨우치는 경우도 적잖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경쟁 심리도 갖게 됐다.
● 수도권-비수도권 대학 자원 활용한 ‘콜라보’
이런 일이 가능한 데에는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 사업(COSS·Convergence & Open, Sharing System)’이 있다. COSS는 대학 간 융합, 개방, 협력을 통한 국가 차원의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여러 대학으로 구성된 연합체(컨소시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개별 대학 차원의 인적, 물적 자원만으로는 효과적인 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됐다. 2021년 8개 컨소시엄을 시작으로 현재 18개 분야 컨소시엄이 선정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컨소시엄에는 연간 110억 원 내외의 자금이 지원된다.
컨소시엄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이 조합을 이룬다. 분야별로 주관대학을 선정하고 컨소시엄으로 묶인 대학들이 흩어진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한다. 대학별로 강점이 있는 교수진, 교육 콘텐츠, 시설, 기자재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이 첨단 분야 교육 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컨소시엄은 지자체 및 산업계와 협업해서 표준화된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진로와 취업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데 주력한다. 교육부는 지난해와 올해, 지역 전략 산업과의 연계를 보다 더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10개 분야에서 지자체 참여형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 타 대학 학생과 같이 공부하며 맞춤 진로 찾아
COSS 사업을 통해 학생들은 누구나 타 대학 학생과 소통하며 원하는 강의를 수강할 수 있다. AI 컨소시엄의 전남대·성균관대 등 7개 참여 대학은 교원·시설 등을 연계해 전공과 관계없이 원하는 학생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바이오헬스 컨소시엄도 단국대가 사업 주관대학으로 나머지 6개 대학과 협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지현 학생이 타 대학 학생들과 함께 바이오헬스 분야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학생들은 전공에 관계없이 마이크로 전공을 통해 첨단 분야 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가령 이지현 학생의 경우, 복수전공과 부전공, 마이크로 전공 형태로 학점을 이수하면 바이오헬스 분야 학위를 받고 세부 전공 수료증도 갖는다. 컨소시엄 대학들은 2026년까지 첨단 분야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 10만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지현 학생은 “다른 대학 학생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사업에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며 “홍익대 언니하고 수업을 함께 듣고 자주 소통하고 있어서 마치 같은 대학을 다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대학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나로 어우러진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학교에서 운영하는 수업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소통하다보니 시야도 넓어졌다”고 했다. 또 “바이오헬스 스타트업 경진대회에 나가 만난 대전대 학생들에게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고,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가서도 다른 대학 학생들과 바이오헬스 분야에 관해 많은 의견을 나누면서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이런 과정을 통해 바이오헬스 분야 디자인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진로 목표도 생겼다. 환자들이 병원으로 갈 때까지의 여정을 함께 디자인하고 제안해주는 역할이다. 실감현실 상황에서 2차원, 3차원 영상화, 모델링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해주고 의료 영상 분석, 의학 콘텐츠 제작 영상화 등으로 의학 생리, 병리 현상 예측을 한다.
미래모빌리티학과 전공으로 미래자동차 분야 컨소시엄에서 공부하고 있는 국민대 정태훈 학생은 “COSS를 통해 심층적으로 첨단 분야 공부를 하고, 보통 학과에서 접하기 어려운 플랫폼을 경험해보니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에 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도 많아진다”며 “학생들이 COSS를 일찍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COSS 콘텐츠 알리는 ‘CO-SHOW’ 처음 열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COSS를 통해 컨소시엄별 사업단이 개발한 교육 콘텐츠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코쇼(CO-SHOW)’를 지난 20∼22일까지 사흘간 대구 엑스코 서관전시홀에서 개최했다. 사업 성과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미래 첨단 분야 인재가 될 초, 중, 고교 학생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번 행사에는 18개 컨소시엄에서 66개 대학, 106개 사업단이 참여했다. 이들은 미래자동차를 비롯해 AI(인공지능), 차세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헬스, 지능형 로봇 등의 분야에서 29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전공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프로그램 체험기를 공개하기도 했다.
AI 분야에서는 가상 인물로 변신할 수 있는 체험(잘생김드림)과 인공 지능과의 대화를 통한 주문 서비스 체험(말랑키오 탐구생활)이 눈길을 끌었다. 빅데이터 분야에서는 대학생들이 AI를 활용해 개발한 운동 자세 분석 체험이 인기였다. 이동 로봇을 조종해보고 햅틱 디바이스 같은 실감미디어를 활용한 롤러코스터, 쿵푸, 가야금 연주 등도 화제가 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800여 명의 대학생이 참가한 경진대회도 17개나 진행됐다. ‘교육 올림픽’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신성환 국민대 미래자동차 혁신융합대학 사업단장(COSS 협의회장)는 “첨단 기술 사업이라는 게 단일 지식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들의 융합체다. 융·복합적 특성의 교육을 해야하는데 한 대학 또는 특정 학과가 교육을 전담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와 대학이 힘을 합쳐 내놓은 게 COSS”라며 “대학간 개방, 공유, 협력이 이뤄지는 이 사업으로 대학생들이 어떤 수준의 교육 콘텐츠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갈고 다듬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CO-SHOW’를 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신 단장은 이어 “대학생들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또 한 번 자신감을 갖게 된다. 초, 중, 고교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진로 선택의 방향을 제시하는 가이드가 될 수 있다. 대학 교육의 수준을 알리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이날 현장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이공계와 비이공계의 벽을 COSS가 점차 허물고 있는 것에 대학과 학생들의 만족감이 크다는 평가도 나왔다. 사업 구상과 진행 초기 단계에서 ‘화학적 결합’이 될 수 있을까라는 염려와 걱정이 컸지만 기우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신 단장은 이에 대해 “각 대학에 있는 교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컸다. 어떻게든 모아서 특별한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학교별로, 학생별로 차이가 있는데 이 간극을 좁혀주기 위해 눈높이 교육도 시도했다.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윤서 교육부 인재양성지원과 행정사무관은 “각 대학에서 산업계 의견을 계속 교과목에 반영하여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대학과 기업이 협업해서 만든 교육 프로그램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첨단 분야 현장이 요구하는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대학의 학사 구조도 혁신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한석 한국연구재단 산학협력실장도 “교육청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초, 중, 고 학생들도 첨단 분야 교육에 갈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COSS와 CO-SHOW가 계속 갈증을 해소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CO-WEEK 아카데미! 팝업 캠퍼스를 아십니까?
COSS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 핵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코위크 아카데미(CO-Week Academy)’다. 첨단분야 핵심융합대학 18개 컨소시엄이 준비한 강의들을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팝업 캠퍼스다. 융합-개방형 캠퍼스다.
매년 한 번 열리는 데 제3회 행사가 지난 7월, 5일간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진행됐다. 올해의 경우 18개 분야에서 175개 강좌(대학주도형 112, 지자체 주도형 63)가 선보였다.
COSS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의 재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수강이 가능했는데 2268명이나 참여했다. 강의를 들으면 계절학기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참가자 만족도 조사에서 행사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서 92.71점, 강의만족도는 93.16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강의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첨단 분야 혁신 융합대학 강의를 찾는다.
신성환 단장은 “예를 들어 쳇 gpt 같은 대화형 AI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코위크 아카데미를 통해 쳇 gpt를 활용해 여러 프로그램을 짜고 챗봇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그 경험을 내 전공에 적용해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는 기회”라고 했다.
강의 외에도 로봇 명사와의 만남, 첨단 분야 기업 인사담당자와 함께 하는 취업 토크 콘서트, 교수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첨단분야 교수자 심포지엄 같은 부대 행사도 열렸다. 내년에는 약 3500명의 학생을 동시간대 교육할 수 있는 제4회 코위크 아카데미를 계획하고 있다.
대구=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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