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트럼프와 황금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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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9.18 17:29 수정2025.09.18 17:29 지면A35

[천자칼럼] 트럼프와 황금마차

영국 버킹엄 궁전에는 로열 뮤스(Royal Mews)라는 왕실 마구간이 있다. 그곳에는 왕실 권위의 상징물인 황금 마차가 여러 대 보관돼 있다.

그중 최첨단은 찰스 3세 국왕이 2023년 대관식 때 탄 ‘다이아몬드 주빌리 스테이트 코치’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호주에서 제작한 것이다. 냉난방장치에 전동 창문, 최신식 서스펜션까지 갖췄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함인 HMS 빅토리호와 16세기 튜더 왕조 때 건조된 메리로즈호, 캔터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같은 역사적인 선박과 건축물 등에서 가져온 목재 조각까지 사용됐다.

찰스 3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 후 버킹엄궁으로 환궁할 때는 왕실 마차 중 가장 유서 깊은 1762년산 ‘골드 스테이트 코치’를 이용했다. 길이 8.8m, 높이 3.7m에 무게가 4t에 달한다. 워낙 무겁다 보니 8마리 말이 끌어야 한다. “배를 타고 거친 바다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승차감은 좋지 않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영 연방을 상징하는 천사상과 바다의 신 트리톤 조각 등 장인정신이 담겨 ‘바퀴 달린 왕관’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영국을 두 번이나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아일랜드 국가 마차’가 제공됐다. 1851년 더블린에서 만들어져 1853년 더블린 대공업박람회 때 빅토리아 여왕의 눈에 띄어 왕실이 구입한 것이다. 이 마차에도 각별한 스토리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47년 필립 공과의 결혼식 때와 의회 개원식에 ‘킹스 스피치’를 하러 갈 때 탄 마차다.

트럼프의 최고 로망 중 하나가 영국 왕실이다. BBC 방송은 트럼프가 영국 왕실로부터 환대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21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표현했다. 왕실은 최고의 의전을 베풀었지만, 영국 국민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방문 첫날 윈저성 외벽에 성범죄자 엡스타인과 트럼프가 같이 있는 사진을 투사한 시위자 4명이 체포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트럼프의 행보에는 늘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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