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정치의 연장’(클라우제비츠)이다. 그렇기에 종전 이후에도 끝없이 정치적으로 재해석된다. 유리한 사실만으로 집단기억을 조작하는 정치적 악용도 다반사다.
6·25 전쟁을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승리’로 자축하는 북한이 그렇다.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을 전승절로 기념한다. ‘미 제국주의자들을 저지하고 인류 평화를 수호했노라’고 주장한다.
프로파간다에 올인하는 사회주의권에서 전승절 의미는 남다르다. 첨단 무기를 대거 동원한 화려한 열병식 등으로 체제 선전에 몰두한다. 무명용사 묘지 헌화 등으로 조촐히 치르는 자유진영과 판이하다. 두 달 전 러시아의 ‘제 2차 대전 종전 80주년’ 행사도 그랬다. 27개국 정상을 불러 세를 과시했다. 중국은 시진핑이 직접 참석하고 인민해방군 의장대도 보냈다.
‘전승절 정치’의 바통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오는 9월 초 사상 최대 규모 행사를 기획하고 이재명 대통령을 초대했다. 2015년에 이은 10년 만의 한국 대통령 초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자유진영 국가로는 유일하게 열병식까지 참관했다. 톈안먼 망루에 올라 시진핑, 푸틴과 나란히 선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돼 후폭풍을 불렀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문제에 대한 협조를 얻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후 중국은 친북 행보를 더 강화했다. 불과 몇 달 뒤 사드 배치와 한한령을 주고받으며 한·중 관계는 더 냉랭해졌다. 명분도, 실익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전승절은 ‘이 시대 전선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누가 참여해 악수하고 눈빛을 교환하는지 세계가 주목한다. 한국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의도하든 않든 시진핑의 중국몽을 함께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게 된다.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타이밍은 최악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장벽이 바로 눈앞에 버티고 선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도 기약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덜컥 전승절 참석을 결정하면 가뜩이나 새 정부의 친중 노선 가능성을 경계하는 워싱턴 정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실용 외교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전승절 참석은 더욱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백광엽 수석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