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이재민]한미 ‘패키지 딜’, 뒷문을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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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문제 재차 논의 없도록 합의문에 적시
韓산업의 美안보 기여 명시, 품목관세 대비
‘합의 이후’ 관리할 적절한 장치도 마련해야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미국이 4월 2일(현지 시간) 상호관세를 발표한 지 어느덧 90일이 훌쩍 흘렀다. 상호관세의 적용 유예가 만료되는 협상 시한(7월 8일)이 다가온다. 그 날짜에 유예를 끝내느니, 다시 연장하느니 분분하다. 어쨌든 이제 한미 협상이 막바지에 들어섰다. 서로에게 중요한 양국이니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쉽진 않지만 윈윈 결과물을 만들 걸로 본다.

설사 9일 일단 상호관세 부과로 넘어가도 앞으로 양국 협상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8월이든 9월이든 최종 합의를 위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양측 모두 다른 대안은 없는 까닭이다.

어쨌든 다가오는 합의에 우리 희망사항이 최대한 포함되길 기대한다. 지난 5개월 소용돌이가 잦아들었으면 한다. 모든 협상이 그러하듯 우리 뜻대로 전부 정리되는 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양보와 타협은 불가피하다. ‘윈윈’이란 그 뜻이다. 지금 협상의 어려움을 국민들이 이해하고 있어 아마 일부 마뜩잖은 부분에도 정부 결단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본다.

지금 단계에서 구체적 협상 결과 예측은 힘들다. 여러 요소와 많은 변수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신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최대한 그리 흘러가지는 않도록 막아서는 일이다. 그럼 우리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뭘까.

지금 가장 나쁜 결과는 8일(또는 그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합의에 이르렀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나중에 해당 문제들이 다시 들춰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들이 양국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라오는 그림이다. 지난 5개월 관세 스토리를 보면 이렇게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단 합의에 이른 것은 반드시 매듭을 짓고 다시 논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명확히 합의문서에 써 둬야 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뚜껑을 다시 연다면 국내적 후폭풍은 만만찮을 것이다.

이를 막는 데 두 가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먼저 비관세 장벽 문제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지난 20여 년의 양국 현안을 대부분 들고 나왔다. ‘비관세 장벽’이란 바구니에 모두 담았지만 사정은 다 다르다. 이들 중 일부는 우리 측 결단으로 조정 내지 변경이 가능하다. 다른 일부는 여러 복잡한 정치적, 법리적 이유로 설령 바꾸더라도 시간이 걸린다. 또 다른 일부는 오해를 풀거나 아니면 뭐가 문제인지 더 탐색이 필요하다. 요컨대 지금 비관세 장벽도 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곧바로 해결 가능한 사안, 시간이 필요한 사안, 그리고 앞으로 협의가 필요한 사안.

여기서 첫 번째 그룹은 이번에 매듭을 짓고 대신 다시 논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유로 다시 관세 부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도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양국 논의는 두 번째, 세 번째 그룹에 대해서만 진행한다는 점과 대략의 시간표를 이번 합의에 담아야 한다. 6월 16일 미영 합의도 타결 사항과 계속 논의 사항을 나누고 있다. 그럼 관세 문제는 어떤가. 상호관세가 정리돼도 ‘품목관세’는그대로 둔다는 게 지금 미국 입장이다. 그리고 품목관세 적용을 넓혀 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일 협상 난항도 이 때문이다. 우리한테도 큰 고민이다. 기껏 상호관세를 철폐하거나 낮추었는데, 품목관세로 우리 주요 수출품이 여전히 고통받거나 심지어 새 품목이 추가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지붕만 쳐다보게 된다.

품목관세 대책 없는 상호관세 합의는 무의미하다. 품목관세 확산에 어떻게든 대비해야 한다. 가령 이번 합의에 한국 산업이 미국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우리 주요 품목은 우리 국가안보뿐 아니라 돌고 돌아 미국 국가안보에도 맞닿아 있다. 방산, 조선, 반도체, 철강, 원자력 등 이미 여러 건이 나왔다. 이 내용을 정리해 명확히 기재하면 나름 공식화 효과가 있다. 품목관세의 근거인 미 무역확장법 232조는 하나만 본다. 오로지 국가안보 관련성이다. 앞으로 품목관세 논의 때 조금이라도 한국을 달리 취급하는 연결고리가 되지 않을까.

이런 안전판들로 최악의 상황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앞문을 열고 잠그는 것만 생각했지 뒷문을 닫아 둔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합의만큼 ‘합의 이후’가 중요하다. 합의 이후를 관리할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게 빠지면 자칫 이 합의 문서는 정기적으로 미 측 입장을 들어주는 창구가 된다. 지난 5개월 마음 졸임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뜻이다.

흔히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한다. 합의 문서는 말할 나위 없다. 실제 쉼표 하나 놓고 국가 간 다툼이 일기도 한다. 한마디 넣고 빼고가 결국 몇 개월, 몇 년 후 우리 형편을 쥐락펴락한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요한 부분에선 우리 입장이 분명한 합의문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중 뒷문 잠그기는 특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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