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국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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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5.09 17:52 수정2025.05.09 17:52 지면A23

[천자칼럼] 미국인 교황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년)였다. 1984년 5월 100만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한국 순교 복자 103위 시성식은 가톨릭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방한사에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1989년 두 번째 방한 때는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신자들과 손잡고 아리랑을 불렀다. 서울 절두산 순교 성지에는 그의 흉상이 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20세기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또렷한 족적을 남긴 교황이기도 하다. 폴란드인으로 최초의 공산권 출신 교황이다. 즉위 8개월 만에 소련 위성국가인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것은 동유럽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였다. 방문 이듬해 그단스크 레닌조선소의 전기 노동자 레흐 바웬사의 ‘솔리대리티’ 운동이 시작된 것. 1981년 5월 교황 피격 사건에는 소련 정보기관 KGB의 개입 의혹이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 붕괴에 혁혁한 역할을 했다면, 얼마 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가장 진보적 성향의 교황이다. 2014년 방한 때 벤츠 방탄차 대신 기아의 소형차 쏘울을 탔을 정도로 소탈한 그는 해방신학의 태동지 남미 출신답게 사회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특히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할 정도로 성소수자에게 관대했다. 그러나 그의 진보적 교리 해석은 전통적 신도 층에서 큰 반발을 샀다. 가톨릭 신자인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그를 “마르크스주의적 파괴자”로 비난했다.

세계 패권국에는 교황 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레오 14세가 미국인으로는 사상 첫 교황에 올랐다. 그의 시대적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프란치스코의 동성 커플 축본론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도 명백히 반기를 드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트럼프가 촉발한 혼돈의 시대에 트럼프와의 소통 중요성이 고려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덧붙여 새 교황은 2027년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방한할 예정이다. 교황의 한국 방문으로는 네 번째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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