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할 짓[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0〉

1 day ago 7

느그 아부지는 요즘 날마다 메뚜기를 잡아다 잡숫는다
배추밭으로 논으로 한바퀴 돌면 꽤 잡아 오시거든
다리 떼고 나래 떼고 달달 볶아서 꼭꼭 씹어 잡숫는다
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는데
난 안 먹어, 못 먹어
고 볼록한 것도 눈이라고 잡으려고 손 내밀면 어쩌는지 아냐
벼 잎을 안고 뱅글뱅글 뒤로 돌아가 숨어
그래도 잡히겠다 싶으면 톡 떨어져 죽은 척을 해
살겠다고 용을 쓰는 거지 뭐야
다 늙은 것이 그 애처로운 몸짓을 어찌 먹나
못 할 짓이지

큰오빠 생일이면 앵두 발갛게 돋는 우물가에서
기르던 닭 모가지도 비틀던 엄마가

막내가 사나흘 몸 덜며 누웠을 때
후박나무 큰 가지에 흰토끼 매달고 단숨에 가죽 벗겨
옻나무에 고아 먹이던 엄마가

―권선희(1965∼ )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좋았다면, 권선희 시인의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을 읽어보시라. 제목 그 자체가 해녀의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인의 말이고 사랑의 말이기도 하다. 사실 시집이 드라마보다 먼저 나왔다. 시인은 이미 한참 전부터 바다의 이야기를 써 오고 있었다. 그러니 한 손에 시집을 들고 드라마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집에서 마음이 저릿한 작품을 하나 소개한다. 바다의 시를 두고 이 시를 받아 적은 이유는 지금이 5월이어서다. 5월은 어린이의 것이며 부처의 것이고 스승의 것이지만 어린이도 부처도 스승도 모두 어머니가 있다. 그래서 진실로 5월이란 내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아름다운 달이다.

저 어머니를 보라. 메뚜기도 못 잡는, 아니 못 잡는 것이 아니라 메뚜기를 가여워하는 어머니가 닭을 잡는다. 토끼를 잡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못 할 짓이 없다. 그렇게 컸고 그렇게 키웠다. 그러니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응당 우리 어머니의 것이 아닌가.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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