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전국 40개 의대의 유급·제적 현황을 9일 공개했다. 전체 의대 재학생 중 8305명(42.6%)은 유급이 확정됐다. 학칙상 예과 유급이 없어 성적 경고를 받은 3027명(15.5%), 1개 과목만 듣는 ‘꼼수’ 수강을 하는 1389명(7.1%) 등 합치면 약 1만2767명이 올해 1학기 수업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다. 이로써 내년에 신입생이 입학하는 예과 1학년은 24·25·26학번 1만여 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을 피할 방법이 없게 됐다.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 지 1년 3개월 동안 교육부는 의대생의 요구 사항을 하나씩 수용하며 물러섰다. 이제는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명분이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동맹휴학 불허 방침을 바꿔 휴학을 승인했고, 지난달에는 수업 복귀율이 저조했음에도 내년 정원을 증원 이전(3058명)으로 되돌렸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두 차례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의료계 반발에 필수 의료 패키지에 포함됐던 정책도 줄줄이 후퇴했다. 그런데도 의대생들은 버티기로 일관했고 결국 부실 교육이 예고된 ‘트리플링’을 자초했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은 결과적으로 정부, 대학, 학생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다. 대규모 유급으로 수년간 정상적인 의대 교육은 어려워졌다. 의대생들은 복귀하더라도 수업 신청부터 병원 실습, 전공의 수련까지 치열한 경쟁을 겪게 될 것이다. 대학은 정책 불확실성 탓에 교수와 시설 투자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정부는 의정 갈등 뒷수습에 허덕이다 의료 개혁다운 개혁은 추진조차 하지 못했다.
의대생들 사이에선 의사 공급난을 버틸 정부는 없으니 차기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원칙대로 처리해야 더 이상 사태가 장기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학사 유연화 같은 특혜로 졸업시키기에만 급급하다간 의사 배출이 지연되는 것만큼이나 우리 의료 시스템이 치를 후과가 클 것이다. 교육부는 플랜 B 없이 엄포만 놓을 것이 아니라 ‘트리플링’을 상수로 보고 교육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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