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말을 듣는 남자[정기범의 본 아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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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책장을 정리하다 오래된 책 한 권에서 손이 멈췄다. ‘L‘Homme qui écoute les légumes.’ 우리말로 옮기면 ‘채소의 말을 듣는 남자’쯤 된다.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 서쪽 이블린의 작은 마을 샤페에서 농사를 짓는 일본인 야마시타 아사후미다. 오래전에 사뒀던 책인데 표지를 보고 있으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사람, 아직도 그곳에서 채소를 키우고 있을까.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난 야마시타는 프랑스로 건너와 처음에는 분재를 키웠다. 이후 파리에서 40여 km 떨어진 샤페에 정착해 일본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의 밭은 대량 생산을 위한 농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직접 돌볼 수 있는 만큼만 심고, 매일 밭을 돌며 채소 하나하나의 상태를 살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돌보듯 잎과 줄기, 흙의 상태를 보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는 것이 농부의 일이라고 여겼다. 야마시타의 이름이 프랑스 미식계에 알려지면서 그의 채소를 원하는 유명 셰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돈을 많이 낸다고 살 수 있는 채소가 아니었다. 한때 그의 고객은 단 일곱 명이었다. 피에르 가니에르, 파스칼 바르보, 안소피 피크 등 스타 셰프들이 포함돼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에서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 농부였다는 사실이다. 야마시타는 자신의 채소를 이해하고 제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셰프에게만 채소를 보냈다. 그의 고집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다. 같은 토마토라도 어느 셰프에게 보낼 것인가에 따라 수확하는 날을 달리했다. 한 셰프에게 보낼 토마토는 꽃이 핀 뒤 85일째 따서 며칠 숙성하고, 다른 셰프에게 보낼 것은 83일째 수확해 다음 날 전달하는 식이었다. 셰프의 요리 방식에 따라 토마토가 가장 맛있는 순간까지 달라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채소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유명 셰프와의 거래도 중단할 만큼 원칙이 분명했다. 아내 나오미와 함께 농장에서 작은 식탁도 운영해 왔다. 주말이면 소수의 손님을 받아 직접 키운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타블 도트’다. 몇 시간 전까지 바로 앞 밭에 있던 채소가 부엌을 거쳐 접시 위에 올라온다. 현재도 지역관광 안내에는 5∼10월 주말에 예약제로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소개돼 있다. 책이 출간되고 야마시타의 이야기가 프랑스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1953년생인 그는 이제 일흔을 넘겼다. 과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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