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이제는 실탄 전쟁이다”
현지 자본시장 한 관계자에게 현재 유럽의 미들마켓(middle market·중소 및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시장) 시장 상황을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유럽의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이제는 누가 실탄을 빠르게 확보해 알짜배기 딜(deal)을 성사시키느냐의 문제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유럽에서는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유럽 사모펀드운용사들의 딜(deal)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불확실성으로 ‘작고 강한 유럽 기업에 싸게 투자해 확실한 성과를 보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이 관련 실탄 장전에 한창이다.
유럽서 수조원 규모 미들마켓 펀드 속속
16일 이데일리가 자체 집계한 결과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유럽 중소·중견 기업을 겨냥해 미들마켓 펀드를 결성한 주요 사모펀드운용사는 총 11곳이다. 펀드를 결성한 대부분이 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사모펀드운용사로, 대형 펀드를 운용하는 곳뿐 아니라 차별화 전략을 앞세운 신생 사모펀드운용사들도 펀드를 속속 결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를 비롯한 경기 회복 기대감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준비 태세에 돌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로 펀드를 결성한 곳은 영국의 오클리캐피털이다. 최근 약 7조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한 오클리캐피털은 유럽의 B2B 서비스·교육·디지털 커머스 관련 중소·중견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북유럽과 영국을 주요 투자처로 둔 IK파트너스도 최근 5조 3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영국의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인 ICG는 4조 3800억원 규모의 미들마켓 펀드를 결성했다. 미들마켓 펀드가 여타 대형 블라인드 펀드 대비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고, 유럽의 중소·중견 기업들이 대기업에 비해 가치 상승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출자자(LP)들이 실탄을 몰아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펀드레이징을 시작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펀드를 결성하는 사례도 탄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 기반의 노르베스터는 펀드레이징 3개월 만에 8000억원 규모의 미들마켓 펀드를 결성했다. 지난 1989년 설립된 노르베스터는 북유럽 미들마켓에 집중한 차별화된 투자 전략과 ESG 중심의 투자 철학 등으로 외형을 빠르게 확장한 사모펀드운용사다. 회사는 이번 펀드로 북유럽의 B2B·산업 기술·ESG 중심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B2B·산업기술에 특히 관심…쩐의 전쟁 막 올린다 그렇다면 유럽 사모펀드운용사들이 쩐의 전쟁을 펼칠 산업은 무엇이 있을까. 업계에선 B2B와 산업 기술, 헬스케어 등을 꼽고 있다. 특히 해당 산업의 기업 중에서도 예측 가능한 수익을 내고 있고, 디지털 전환 가능성이 큰 기업에 대한 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모펀드운용사들이 특히 집중적으로 공략할 것으로 전망되는 산업은 B2B다. 계약 기반으로 돌아가는 B2B 서비스 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디지털화가 덜 된 사례가 많아 혁신 여지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소규모의 알짜 기업이 많아 바이앤빌드(buy and build·하나의 핵심 기업을 인수한 후 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관련 기업을 지속적으로 인수해 회사 규모와 기업가치를 빠르게 키우는 전략)에 적합한 매물이 많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유럽의 수많은 제조업체의 디지털 전환을 돕는 산업 기술 분야에 대한 사모펀드운용사들의 관심도 크다. 유럽의 정밀 제조, 기계 부품, 산업 소프트웨어 업체들 다수가 가업승계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사모펀드운용사들이 경영권을 확보해 기업을 업그레이드할 매물 및 투자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현지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유럽 미들마켓은 사모펀드운용사들에게 있어 매우 큰 투자 기회”라며 “미국 대비 낮은 기업가치(밸류에이션)를 지니면서도 산업 트렌드에 부합하고, 가업 승계를 계획하는 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력적인 딜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넘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탄을 모은 하우스들끼리 선점 경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