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훈 이수빈 기자] 서울 집값과 가계대출이 동반 급등하면서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금융당국은 일부 은행의 공격적인 대출 영업을 문제 삼아 전방위 점검에 착수할 예정이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DSR 규제 시행을 앞둔 ‘막차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당국의 대응 기조가 은행권의 금리 운영 전략과 충돌하면서 정책·시장 간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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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은행권 긴급 소집한 당국…“막차 수요 영업행태 점검”
금융당국은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 주재로 주요 은행 부행장을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현장점검을 예고했다. 이 자리에서 당국은 최근 대출을 빠르게 늘린 일부 은행의 공격적 영업 행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당국이 은행권을 긴급 소집한 배경에는 최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서울 전역과 경기 외곽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판단이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수요자 자금 공급이 위축되고 투기적 수요가 시장을 교란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데 부처 간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번 간담회에서 은행별 대출 증가 속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만기 운용 방식, 전세대출 취급 현황 등을 점검했다. 특히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 등 일부 은행이 주담대 만기를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려 대출 한도를 확대한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이달 중 해당 은행들에 대한 현장점검에 착수할 계획이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회피하거나, 고DSR 대출 비중이 기준 이상인 사례가 있는지를 정밀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DSR 70%를 초과하는 대출은 전체 대출의 5%, 90% 초과는 3% 이내로 관리해야 한다. 최근 일부 은행이 미래 소득을 과도하게 반영해 DSR을 느슨하게 적용한 정황도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 수치를 보면 가계대출 증가세는 뚜렷하다.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3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50조 8422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2조 761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주담대는 2조 1665억원, 신용대출은 6396억원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6월 한 달간 5대 은행에서만 가계대출이 6조원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택시장 반등 조짐과 맞물려 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수도권 아파트값도 상승 흐름을 타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조치와 주담대 규제 완화 기조가 맞물리며 주택 매수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7월부터 시행하는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를 앞두고 대출을 미리 확보하려는 ‘막차 수요’가 겹치면서 대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대출 증가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수도권 전세대출 보증비율 하향 조정, 주담대에 대한 자본 규제 강화 등 추가 조치도 검토할 방침이다.
당국의 규제 강화 전망에 은행권의 예대마진 딜레마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3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 도입을 앞두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가산금리를 높이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예금금리는 1%대까지 하락하며 예대금리차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첫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예금금리는 내려가는데 대출금리는 그대로여서 예대금리차가 과도하게 벌어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은행권의 긴장감이 한층 더 높아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을 억제하라고 압박하면서도 금리를 낮추라고 하면 양립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규제 환경상 금리를 낮추기 어려운 구조다”고 말했다.
“고가 아파트 타켓 규제 필요”…“단기적 현상에 과도 대응 말아야”
금융당국은 앞으로 대출 추이를 예의주시하며 필요하면 추가적인 규제 카드도 꺼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의 과열 가능성과 금융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선 앞으로 규제 방향에 대해선 엇갈린 시각을 내놓기도 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것 자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순 없다”며 “무주택자나 국민주택 규모 이하는 열어놓고 고가 아파트에 대한 타깃형 규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달 DSR 3단계 규제를 도입되면 시장이 일정 부분 자율 조정될 것이다”며 “단기적 현상에 대해 과도하게 대응하면 은행의 예대마진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으로 이어지며 정책 엇박자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재준 인하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가계대출 급증세는 서울 집값 상승, 기준금리 인하 기대, DSR 규제 유예 등 복합적인 심리가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다”며 “지분형 모기지도 기대심리를 자극한 만큼 시행 시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