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정부가 10년만에 최대 규모의 복지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과도한 복지 혜택이 청년들의 일할 기회를 빼앗고 이들을 복지병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리즈 켄달 영국 노동연금부장관은 18일(현지시간) 하원에서 "국민과 국가 전체에 피해를 주는 현재의 망가진 복지 시스템을 용납할 수 없다"라며 이같은 개혁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의 골자는 일상 생활에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또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개인자립수당(PIP)의 지급 요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노동당은 2013년 도입된 PIP가 최근 심각하게 남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PIP 수급자는 지난 1월 기준 366만명으로 5년 만에 71% 증가했다. 전체 노동 연령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숫자다. 노동당은 PIP 수당 급여 총액이 2029/2030회계연도(2029년4월6일~2030년4월5일)까지 700억파운드(약 13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켄달 장관은 과도한 복지 혜택이 젊은이들로부터 '일할 기회'를 박탈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직 상태이거나 교육·직업훈련을 못 받은 청년이 전체의 8분의1에 해당하는 100만명에 달한다며 "일할 수 있는 수백만명이 이 혜택에 얽매여있다"고 지적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수백만명, 특히 젊은 세대가 일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잠재력이 있는데도 복지 혜택에 의존한다"며 "그들이 이렇게 삶을 낭비하도록 두는 것은 도덕적으로 파산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PIP 심사는 요리, 식사, 세탁, 옷입기, 소통 등 각 항목별로 0점에서 12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주당 최대 184파운드(약 34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동당 정부는 PIP를 받기 위해 최소 한 항목에서 4점을 받도록 요건을 강화할 계획이다. 새 기준은 내년 11월부터 적용된다. 싱크탱크인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이번 조치로 80만에서 120만명이 청구 자격을 잃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당은 이 외에도 저소득층·장애인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통합 수당(유니버설크레딧)' 급여를 연 775파운드 인상하되 2029/2030회계연도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통합 수당 지급 시작 연령은 18세에서 22세로 높였다. 이를 통해 총 50억파운드(약 9조4000억원)의 지출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보수·노동당 정부를 통틀어 지난 10년 간 최대 규모 복지 절감 구조조정으로 평가된다.
진보 정당을 표방하는 노동당이 복지 구조조정에 나선 데는 재정 압박이라는 현실적인 배경도 작용했다는 평가다. 스타머 내각은 지난해 10월 자본이득세율과 국민보험료율 등을 인상하는 연간 약 400억파운드(약 71조5000억원) 규모의 증세를 단행했음에도 정부의 재정 여유가 99억파운드에 불과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으로 영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영국 경제전망이 악화하면서 2029/2030회계연도까지 50억파운드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타머 내각의 '우클릭'에 노동당 내부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하원 근로연금위원회 위원장인 데비 애이브럼스 노동당 의원은 이날 "당 지도부가 환자와 장애인을 뒷전으로 하며 재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클라이브 루이스 하원의원도 "유권자들은 이것이 노동당 정부가 취할 만한 조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각 인사 중 상당수는 지난 주말 레이첼 리브스 재무장관에게 복지 지출 감축 계획을 재고하도록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