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성으로 탄생한 예술적 미감(味感)

4 days ago 7

시간과 경험이 누적된 ‘즉흥성’은 예술이 된다. 마티즈의 선(線)이 그랬고 로스코의 색(色)이 그랬다. 이탈리아어로 ‘즉흥적’, ’단번에’ 라는 뜻의 레스토랑 ‘알라 프리마(Alla Prima)’는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 논현동 골목 한편에서 약 10년 동안 존재감을 증명해 온 레스토랑이다. 오픈한지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에 1스타로 등재되었고, 2년 후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9> 2스타로 선정되어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알라 프리마’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채광이 들어오는 개방형 주방과 테이블 사이를 여유롭게 배치한 홀이 눈에 들어온다. 고객들은 식사 도중 주방의 역동적인 모습을 틈틈이 감상할 수 있고, 옆 테이블의 간섭 받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레스토랑이 전반적으로 간결 명료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는 것은 철저하게 손님을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공간에 접근한 오너 셰프 김진혁의 노력 덕분이다.

'알라 프리마' 오너 셰프 김진혁. / 사진. ⓒ 이진섭

'알라 프리마' 오너 셰프 김진혁. / 사진. ⓒ 이진섭

‘알라 프리마’의 메뉴에는 별도의 명칭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연주자에게 모티브만 주고, 임프로바이징하라는 것처럼 요리에 사용된 제철 재료만 언급하고, 맛 경험은 고객에게 맡긴다. ‘알라 프리마’의 음식 경험을 흥미로운 게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었던 9월 어느 날, ‘알라 프리마’의 오너 셰프 김진혁을 만났다. “’알라 프리마를 시작할 때는 매일 재료와 메뉴를 바꿔봤어요.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어느 순간 건강이 허락지 않았고, 나름의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무모한 도전들은 시간을 거듭해, ‘알라 프리마’만의 정체성과 예술적 미감(味感)을 만들어냈다.

레스토랑 알라 프리마의 사인. / 사진. ⓒ 이진섭

레스토랑 알라 프리마의 사인. / 사진. ⓒ 이진섭

▷ 셰프님의 요리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왜 일식에 빠져들게 되셨는지?

어머님 생신 때마다 가족들끼리 일식을 먹었는데, 식당에 있는 셰프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요리를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20대 중후반에 ‘나는 무엇을 하고 살까.’를 생각하면서 방황하다가 청담동 일식집에서 월급 80만원을 받아 가면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칼갈이부터 배우고 냄비도 닦았습니다. 점차 굽기, 튀기기, 회 뜨기 등을 배웠어요. 현장에서 선배들이 주는 가르침을 빨리 흡수했던 것 같아요. 아마 당시 제가 누군가의 가르침이 굶주렸었나 봐요. 1년 휘몰아치듯 달리니, 주방에서 넘버 3가 되어 있었고, 2년 차가 가게의 모든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나, 당시 제 모든 것을 쏟아부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3년 차에 과감히 그만두었어요.

▷ 그 후 일본으로 향하셨죠? 그곳에서는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욕구들이 새로운 도전들로 이어졌나요?

아니요. 막상 일본에 가니 매우 우울했습니다. 제 자신이 낯선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 식당에서 외국인을 잘 안 받아줬어요. 처음에는 라멘집에서 설거지만 하다가 그만두고, 우여곡절 끝에 우에노에 있는 식당에서 튀김, 샐러드, 칼집 등을 직접 경험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가르쳐줬어요. 불리했던 제 모든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 일본에서도 쉽지 않았던 시기였는데, 그때 일본 최초의 조리/영양사 양성 기관인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 입학하셨죠?

네. 일본에서 온 지 1년 정도 지났는데, 큰 기대를 갖고 온 일본에서 막상 제가 한 일이 없더라고요. 더 머물기 위해서는 비자도 필요했고요. 학교에 입학해 요리 전반을 공부했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배웠고 일식도 기초부터 다시 배웠는데, 굉장히 흥분되었어요. 현재 레스토랑 ‘류니끄’의 류태환 오너 셰프님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의 소개로 창작요리를 하는 (지금은 없어진) ‘마이몽’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실제 그 레스토랑은 뉴욕에 진출하기 위해 일본에서 시험 삼아 운영하던 곳이어서 학교를 다니면서 운 좋게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그때의 경험은 제가 셰프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알라 프리마를 만든 DNA라고 생각해요.

채광이 드는 알라 프리마의 오픈 키친. / 사진. ⓒ 이진섭

채광이 드는 알라 프리마의 오픈 키친. / 사진. ⓒ 이진섭

▷ 분자요리의 선구자인 ‘페란 아드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의 요리가 셰프님의 마음에 와닿았나요.

핫토리 영양전문학교에서 ‘엘 불리(El Bulli)’를 이끌던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 스타일을 많이 도입했어요. 당시 분자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어요. 저는 그를 실제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요리를 먹어본 적도 없었지만, 책을 통해 페란 아드리아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으로 요리를 대했는지 깊게 흡수했어요.

지금 시점의 분자요리는 트렌드가 많이 바뀌어서 사람들이 예전처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데, 페란 아드리아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요리 장르를 남긴 사람이잖아요. 그게 현재는 다양한 요리 문법이 되어 요리들을 진화시키고 또 다른 장르를 탄생시켰어요. ‘음식을 가지고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구나’를 제일 먼저 일깨워 준 사람이 페란 아드리아거든요. 그래서 그가 제 요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줬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 도쿄 긴자에 위치한 유명 일식당 ‘록산테’에서 짧지만 강렬했던 경험은 어떠셨어요?

일본의 유명 셰프 ‘미치바 록사브로’가 있었던 록산테에서는 일본 음식의 본질로 돌아가서 탐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정말 제대로 된 일식을 했는데 그 시간은 3개월밖에 안돼요. 하지만 그 환경이 굉장히 열악해서 정말 뭐든지 다 해볼 수 있었거든요. 오히려 안 좋은 환경이 저에겐 득이었던 거죠.

▷ 일본에서 갖은 경험을 하시고, 정말 일식을 좋아하셨는데, 레스토랑 이름을 이탈리아어인 ‘알라 프리마’로 지으셨단 말이에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음식을 하면서 제가 보낸 시간은 결국 모든 요리 문화가 다 섞인 시간이었어요. 페란 아드리아가 음식의 시각을 확장시켜줬다면, 마이몽은 유연한 요리 경험을 선물해줬고요. 음식으로 일본부터 이탈리아까지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해요.

메뉴 은어, 오이, 크레송, 제피. / 사진. ⓒ 이진섭

메뉴 은어, 오이, 크레송, 제피. / 사진. ⓒ 이진섭

▷ 재료만 쓰인 메뉴를 처음 접했을 때 흥미로웠어요. 마치 ‘알라 프리마’는 소재만 던져주고, “(저희가 가이드는 드릴게요) 고객님이 이 재료들을 마음대로 연주해 주세요”라는 어투였거든요. 사실 제가 재료들을 하나하나 맛볼 때 각자 명확한 맛이 났는데, 설명해주신 대로 먹어보니 간과 향, 식감의 균형이 좋아서 놀랐어요.

말씀하신 대로 음식이 나왔을 때 고객에게 예상 밖의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함이 커요. 레스토랑 시작 처음부터 그렇게 했거든요. 결국 ‘알라 프리마’는 김진혁이라는 장르의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고전적인 틀을 제시한다기보다 식재료만 나열해 드시는 분들이 맛을 상상할 수 있게 구성한 거죠. 파스타도 원래 이탈리아 스타일로 하면 전반부에 나와야 하는데, 한국은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섭취하기도 하니까 음식이 나오는 순서도 바꿔보고요.

[왼쪽부터] 바다장어, 마, 트러플, 머위꽃과 아카시아, 요거트, 완두콩. / 사진. ⓒ 이진섭

[왼쪽부터] 바다장어, 마, 트러플, 머위꽃과 아카시아, 요거트, 완두콩. / 사진. ⓒ 이진섭

▷ 메뉴 자체도 ‘알라 프리마’의 의미와 잘 맞네요. 하나의 요리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요.

처음에는 메뉴를 매일 바꿨어요. 지금보다 작은 데서 오픈했을 때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때는 속도와 다양성으로 승부를 보려 했어요. 지금은 플레이팅에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제가 상상한 것을 잘 풀어내려 노력합니다. 결국 좀 더 세련되게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서 지금의 알라 프리마가 있는 거거든요. 결론은 시간이 엄청 걸리는 거죠. 시도 때도 없이 바꿔보고, 편집해보고, 적용해보고.

▷ 제철 재료를 사용하시니, 시그니처 메뉴보다 시그니처 재료가 있을 거 같아요.

맞아요. 다들 시그니처 메뉴를 물어보시던데, 저는 시그니처 메뉴가 없고, 시그니처 재료가 있다고 해요. 그냥 계속 천천히 바뀌기 때문에 시그니처 메뉴라는 건 의미가 없죠. 봄에는 둥굴레 순을 이용하고, 은어, 갯장어, 머위꽃 등은 계속 사용해 온 알라 프리마의 시그니처 재료들입니다.

▷ 오픈한지 1년 만에 미쉐린 가이드 1스타로 등재되고, 2년 후에 2 스타로 레스토랑 이름을 올리셨어요.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되고 받은 감정이 남다르셨을 거 같은데요.

제일 기뻤을 때는 1스타를 받았을 때였어요. 당시 굉장히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그게 맞아 들어가서 나름의 검증도 되었고요. 평가원들이 누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제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어요. 요리 스타일도 훨씬 거칠었는데, 그때부터는 정교하게 요리하기 시작했고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연구했어요. 그렇게 받은 1스타는 저에게 주는 선물 같았어요. 2스타를 받을 때는 사실 현실감이 조금 없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내가 2스타라고?” 생각하다가 1년 정도 지나니 다른 어워드나 제안들이 많이 들어왔고, 오시는 분들도 좀 더 다양해졌어요.

▷ 2스타에 선정되시고 약 7년 넘게 그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셨잖아요.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대단하고 어려운 것인데, 셰프님만의 방법이 있으신지.

그냥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2스타라는 무게감이 있으니, 프라이드도 있지만 책임감도 커요. 제가 이걸 지키지 못하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지만, 그 또한 이겨내야죠. 미쉐린 레스토랑의 고객들은 신규 고객이 항상 많고, 계속 바뀌어야 합니다.

저는 음악, 영화, 게임을 굉장히 좋아해요. 일과 상관없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만보고, 꽂혀있으면 그것으로 저를 채우는데 집중합니다. 안 그러면 잡생각도 많아지고, 걱정만 늘어요. 음악은 그것보다 조금 더 위에요. 예전에 타워레코드에 뭐라고 써 있었는데…

▷ No Music, No Life요?

네 맞아요. 딱 그거에요. 음악은 정말 하루종일 틀어놔요. 어디를 가든, 일을 하든.

▷ 음악은 어떤 걸 주로 들으세요?

저는 무언가에 빠지면 굉장히 분석적으로 접근해요. 하나의 틀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요. 원류가 있으면 다른 지류가 있는. 음악도 그런 식으로 들어요. 최근에 어어부 밴드의 백현진님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예전에 선호하지 않던 음악이었는데, 최근에 들으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 셰프님의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는지도 궁금해요.

신변잡기. 많은 것들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 3년 후, 5년 후 ‘알라 프리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너 셰프 김진혁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요?

우선, 제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몸도 더 잘 챙기면서 제가 자신을 더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알라 프리마' 오너 셰프 김진혁. / 사진. ⓒ 이진섭

'알라 프리마' 오너 셰프 김진혁. / 사진. ⓒ 이진섭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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