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 호랑이를 죽였다."
"대부분 위안부는 11세에서 19세 사이였다."
"한국의 마지막 공주에게 일본인과 결혼을 강요했다."
최근 틱톡에서는 일본의 전쟁 범죄와 일제강점기 만행을 지적하는 댓글이 폭발했다. 출발점은 뜻밖에도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이었다.
한 해외 틱톡커는 케데헌 속 호랑이 캐릭터 '더피'를 좋아하다가 한국 호랑이에 대해 검색하던 중, 일제강점기 일본이 호랑이를 '해수(害獸)'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사냥해 결국 멸종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 내용을 영상으로 공유했고, 단숨에 좋아요 18만 개, 조회수 114만 회를 기록하며 전 세계로 확산했다.
영상에는 "케데헌을 보다가 한국 호랑이 역사를 찾아봤는데, 일본이 지난 세기에 한반도 호랑이를 모두 사냥해 멸종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내레이션이 담겼다. 이어 "나랑 남자친구가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에서 완전히 슬펐다"는 고백도 덧붙여졌다.
실제로 일본은 1917년 '정호군(征虎軍)'이라는 민간 사냥대를 조직해 조선 호랑이 토벌에 나섰다.
사냥꾼 야마모토 다다사부로 등이 함경북도·강원도 등지에서 대대적인 사냥을 벌였고, 1920년대 이후 한반도 야생 호랑이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는 단순한 생태 훼손이 아니라 민족정신을 꺾으려는 시도였다. 사냥꾼들이 부른 '정호가'의 가사에는 제국주의적 야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위안부·공주 강혼까지…줄줄이 소환된 일본 만행
해당 영상 댓글 창에는 2000여 개가 달리며 일본의 과거사가 연달아 언급됐다.
해외 누리꾼들은 "그들은 한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근절하려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회복력의 상징이 됐다", "일본은 전쟁 범죄를 역사책에 포함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국의 잔혹 행위를 모른다",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대부분 위안부는 11세에서 19세, 평균 14세였다"는 구체적 지적과 "한국의 마지막 공주에게 일본인과의 결혼을 강요해 주권 계통을 훼손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공유됐다. 한 누리꾼은 "일본의 역사는 아름답지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리브랜딩에만 열중해왔다"고 꼬집었다.
한국 누리꾼들 역시 "케데헌이 일본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역시 문화의 힘이 크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전 세계가 진실을 알아야 한다"며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일본 자본인 소니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케데헌은 전 세계 스트리밍 기록을 새로 쓰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K-팝과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작품은 일본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과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가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적인 스토리를 일본 회사가 함께 만든 셈인데, 그 결과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과거 만행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中 관객 "일본인 잔인하다, 용서할 수 없다" 눈물 반응
중국에서도 일본 과거사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73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가 자행한 생체실험 만행을 다뤘다.
이 영화는 개봉 첫날 3억 위안(약 585억 원)을 벌어들이며 중국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만주사변 발발일(9월 18일)에 맞춰 공개된 이 작품은 3000명 이상의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이 희생된 사실을 토대로 제작됐다.
중국 관객들은 오성홍기를 흔들며 영화를 관람했고, "일본인들은 너무 잔인하다.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영화가 시작되자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있었다"며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본 40대 여성은 '일본인들은 너무 잔인하다.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객은 "중국인이라면 일본에 가서는 안 된다. 이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중국 내 반일 정서가 고조되면서 일본 교민 사회는 불안에 떨고 있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외출 시 일본어 사용과 일본식 복장을 피하라고 권고했고, 베이징·상하이·쑤저우 등 일본인 학교는 개봉일에 등교를 중단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다.
◇전문가들 "문화 콘텐츠, 과거사 교육의 새 통로"
전문가들은 SNS와 대중문화 콘텐츠가 과거사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분석한다.
케데헌의 '더피'에서 시작된 한국 호랑이 멸종사, 그리고 중국 영화 '731'의 기록적 흥행은 공통으로 일본의 과거사를 세계적으로 재소환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가 이제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역사 기억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케데헌의 성공은 단순한 작품 인기에 그치지 않고, 알고리즘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하며 대중의 자발적 참여와 공유를 끌어내고 있다"며 "작품이 크게 성공하면 단순히 콘텐츠 차원을 넘어 박물관 전시나 사회적 담론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정 평론가는 "더피에서 호랑이, 호랑이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는 흐름처럼 원작과 직접 관련이 없는 주제도 온라인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며 "요즘은 주입식 교육보다 대중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발굴하고 전파하는 힘이 훨씬 강하다. 문화를 다룬 콘텐츠가 성공하면,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역사로까지 확장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