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과학자 돕는 게 어른의 일”...조완규 초대 과기한림원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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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과학자 돕는 게 어른의 일”...조완규 초대 과기한림원장 별세

조완규 초대 과기한림원장 13일 별세
열악한 환경에서 성과 낸 1세대 과학자
“젊은 과학자들에게 미래 있다”

조완규 초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 13일 새벽 별세했다. 고인은 평생을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과 교육 토대를 마련하는 데 바친 큰 어른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조완규 초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 13일 새벽 별세했다. 고인은 평생을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과 교육 토대를 마련하는 데 바친 큰 어른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1946년, 서울대 생물학과에 있는 장비라고는 현미경과 전자저울이 전부였다. 스무살 청춘은 할 수 있는 실험이 없어 전국의 산을 누비며 곤충을 채집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학교마저 사라졌다. 피란길 부산 국제시장에 매물로 나온 현미경을 사들여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맨손으로 시작한 공부, 조완규 초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뚝심 하나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과학자로 성장했다. 70년 넘게 과학자로 살았고, 한국 기초과학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다. 겉으로는 “의지만 있으면 맨손으로도 첨단 연구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후배들의 손에 뭐라도 쥐여주려 평생 애썼다. 그렇게 허허벌판에서 오늘날 한국의 과학과 바이오 산업의 토대를 닦았다.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과학의 부흥을 생각했던 조 전 원장이 13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향년 98세. 생전 노학자의 소망은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꼭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바람은 후배들에게 무거운 과제로 남았다.

고인은 국내 1세대 과학자이자 혁신도전형 연구자의 전형이었다. 1946년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해 혼란한 한국 현대사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한국 기초생물학 분야를 개척했다. 종이와 연필만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의 출생성비를 분석했다.

1957년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로 임용된 후 포유동물의 난자 성숙 과정을 조절하는 기전을 규명해 세계 생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난자와 배아를 안전하게 운반하는 배양법을 개발하는 등 독창적인 연구도 수행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잘 모를 때, 조 박사가 한국의 연구 성과를 먼저 알렸다.

천상 연구자이면서 탁월한 교육·과학 행정가이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유전공학육성법’ 제정을 주도해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비 지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1991년에는 학계와 기업을 연결하는 한국바이오산업협회를 창립해 지식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오늘날 한국 바이오 산업의 씨앗을 조 전 원장이 뿌렸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과학·교육 행정에 뛰어들었다. 1984년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과학기술계 리더십을 혁신했다. 학회 예산 확보, 해외 과학기술인 유치 등 과학기술계 단체의 체질을 바꿨고 국제백신연구소의 한국 유치를 성공했다. 1987년부터 서울대 총장, 교육부 장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초대 원장을 도맡았다.

자신은 맨손으로 시작했으나, 후배들의 손에는 무엇이라도 쥐여주고 싶어 했다. 서울대 총장 시절 연구비 중앙관리제도를 수립해 연구비가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도록 만들었다. 연구비 체계가 확실해야 더 많은 실험 장비를 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미국에 파견한 교수가 돌아올 때는 사용하던 실험 기기를 전부 구매해 연구가 지속되도록 지원했다.

과학기술한림원을 만든 것 역시 젊은 과학자들을 위해서였다. 조 원장은 한림원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는 창의력이 충만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다”며 “한림원 구성원은 젊은이의 스승으로서 과학기술력을 축적하도록 힘을 북돋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대 동창회보 인터뷰에서는 “젊은 과학자의 능력을 보면 노벨상 수상자를 충분히 배출할 수 있다. 40년 후 분명 노벨과학상 수상 후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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