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쌓은 투자유치, 엑시트 땐 부메랑…지분 매각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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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대주주의 함정]②
20조 美상장 꿈꾸던 카카오엔터 매각 추진
1조 투자유치 컬리도 IPO 무산에 곤혹
카카오모빌, 소수지분 매각에 분쟁 우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회수 앞에 냉정한 FI

  • 등록 2025-05-14 오전 7:40:00

    수정 2025-05-14 오전 7:40:00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공격적으로 투자금을 끌어모아 사세를 키운 기업들이 수년 뒤엔 투자자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요구에 발목 잡히고 있다.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던 자금 유치가 기업공개(IPO) 지연이나 매각 실패로 이어질 경우 갈등의 도화선이 되기도 해서다. 차익 실현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나 벤처캐피탈(VC) 등 재무적 투자자(FI)의 회수 압박이 도리어 경영권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한때 기대주 카카오엔터, 매각도 상장도 난항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035720) 자회사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싱가포르투자청(GIC), 중국 텐센트 등 주요 주주들에게 경영권 매각을 위한 서한을 발송했다. 2대 주주인 앵커PE는 2016년부터 두 차례 투자를 통해 지분 12.4%를 확보했고 GIC와 PIF가 각각 5.1%, 중국 텐센트가 4.61%를 보유 중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카카오 계열사 중에서도 기대주 중 하나였다. 2019년 NH투자증권과 KB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며 IPO 준비 과정을 밟아왔고, 2021년 회사 측은 미국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 20조원을 거론하기도 했다. 2023년 GIC와 PIF로부터 1조2000억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11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IPO 시장이 침체기에 빠진데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당시 시세 조종에 카카오엔터가 연루됐다는 의혹마저 불거지며 상장은 사실상 물 건너 간 일이 됐다.

카카오가 희망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매각가는 최소 11조원이다. 2023년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 이상으로 매각에 성공해야 PIF·GIC 등 투자자들의 회수를 도울 수 있어서다. 다만 증권가에선 카카오엔터 기업가치를 절반인 4조~6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어 괴리감이 상당하다. 이대로 매각이나 상장을 강행한다고 해도 투자자들의 손실은 물론 ‘헐값 논란’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컬리, 공격적 투자유치가 되레 상장 발목

컬리도 투자유치와 IPO 무산 사이에서 곤혹을 치른 곳 중 하나다. 컬리는 2015년 출범 이후 10여 년간 1조원에 달하는 외부 자금을 적극 수혈하며 재원으로 삼았다. 2018년 삼성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해 2019년 코스닥 상장을 꿈꿨다. 하지만 상장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서 일정이 미뤄졌고 2021년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JP모간으로 주관사단을 꾸렸지만 이마저도 엎어졌다.

공교롭게도 컬리의 상장을 막은 건 투자유치였다. 수차례 투자금을 받으며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면서 김슬아 대표의 경영권이 약해진 탓이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후 경영의 안정성을 위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20% 이상을 유지할 것을 상장심사 승인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은 지난해 말 기준 5%대에 그쳤다. 반면 최대주주인 미국 세콰이어캐피탈(11.19%), 앵커PE(10.88%), 힐하우스캐피탈(10.33%), DST글로벌(8.84%), 아스펙스캐피탈(7.37%) 등 해외 투자자들의 합산 지분은 50%에 육박한다.

최근 1조원 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한 카카오모빌리티에도 비슷한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UAE) 국부펀드인 무바달라와 골드만삭스는 국내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꾸려 카카오모빌리티 소수지분 40~49% 인수에 나섰다. 이번 투자유치로 카카오모빌리티 기업가치는 6조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최대주주인 카카오와 지분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분 담보로 한 투자유치…회수 압박 직면

일부 기업들은 투자유치에 나서면서도 경영권 매각 가능성은 전면 부인하기도 한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을 운영하는 엘비엠(LBM)이 기업가치(지분 100%)에 준하는 3000억원 규모 투자유치를 추진하자 매각설이 불거졌는데, 엘비엠 측은 경영권 매각이 아닌 투자유치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 당시 임종윤·임종훈 형제 역시 1조원대 투자유치를 추진하면서도 지분 매각 계획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가 시장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영권을 의식해 소수지분 담보로 투자유치를 받았더라도 차익 실현을 추구해야 하는 FI들의 엑시트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 주주들은 가차없이 지분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외부 자금 조달을 좇는 기업들은 결국 수년 안에 경영권 분쟁이나 매각 이슈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IB업계 관계자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결국 지분을 담보로 투자유치를 받는 건데 수천억원, 조단위 투자금을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건 너무 순수한 발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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