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 원자력협정 강조하는 정부…왜 필사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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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  / 사진=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 /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자주국방을 또 언급했다. 지난달 21일 SNS를 통해 돌연 "외국 군대 없이는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굴종적 사고"라고 밝힌 후 불과 열흘만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 대통령의 국군의날 발언 다음 날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과 안보 분야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도 합의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 중·러와 관계에 전향적인 이재명 정부가 안보를 특별히 강조하는 배경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 내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른바 '동맹파'와 북한이나 중국과 관계에 신경쓰는 '자주파' 모두 안보를 강조한다.

北과 조건없는 대화...북핵 앞 벌거벗을 우려

정부가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연일 남·북 '두 국가론'을 설파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국방비를 급격히 늘리는 것은 향후 북한 핵무기가 용인될 것에 대비하는 차원이란 해석이다. 이 대통령도 지난달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로 구성된 'END 이니셔티브'를 선보이며 대북 유화정책을 공식화했다.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를 장기 과제로 미루고 우선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중대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북이 이미 핵무기를 가졌는데 용인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목소리도 있지만, 미국의 확장억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쉬운 말로 한국이 실제 북한 핵 미사일에 맞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얘기다.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이라 부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하고, 미국 내에서 북핵에 대한 위험 인식이 확산되면 우려는 현실화한다. 북한의 실제 능력과 무관하게 미국 내에서 북한 핵 보유가 공식화하고, 미 본토에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날아들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 미국이 한국을 위한 핵 보복을 망설일 것이란 우려다.

김정은이 핵 무기를 쓸 경우 인류의 공적이 되기 때문에 핵 사용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 역시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을 향한 핵 무기는 위협용에 불과할지라도 남한을 겨냥한 핵 무기는 실전용이란 지적이다. 지난 5월 방한한 미국 랜드(Rand) 연구소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을 인구 밀집지역이 아닌 곳에서 공중폭발시켜 EMP(전자기펄스) 쇼크로 발전소와 전자장비 등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연구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남한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만 해도 그들에겐 남는 장사'라는 주장도 나온다. 주민 동요나 탈북 문제 등을 완화할 수 있어서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저서에서 "김정일은 한국 자체를 쓸어버려야 북한의 영원한 생존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장관이 지난달 국회에서 "남한의 존재 자체가 그들(북한)에게는 위협"이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한 계기에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UN 총회의장 주최 ‘글로벌 AI 거버넌스 대화 출범 고위급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한 계기에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UN 총회의장 주최 ‘글로벌 AI 거버넌스 대화 출범 고위급회의’에 참석,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원자력 협정 개정은 상업적 이유?..."미국 사람들이 바보냐"

'자주파'가 급발진하는 가운데 직업 외교관 출신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동맹파'는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개정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기회가 날 때마다 '협상에 진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5일에도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 역시 지난달 이 대통령의 END구상에 대해 "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 세 요소는 서로 추동하는 구조"라며 북핵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위 실장은 최근 여러 차례 "한미 원자력협정에 진전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개정되면 우라늄 농축 시설을 확보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을 상대로 북핵 용인의 반대급부로 언제든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 잠재력'을 얻어내려 한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동맹파들은 한미동맹과 비핵화 기조를 고수하며 북한이 파키스탄 같은 '사실상 핵 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되는 것을 저지하는게 명시적 1차 목표다. 동시에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카드를 최후의 보루로 미 측에 제안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외교부는 "한국이 원전 26기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로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농축·재처리를 포함한 완전한 핵연료 주기 확보 필요성을 설명했다"며 "이는 오로지 우리 원전의 안정적 운용을 위한 상업적 목적임을 강조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선 '미국 정부 관료들이 바보는 아닐 것'이라고 일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이번 정부는 핵무장에 반대한다"면서도 "적어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용 원자로 연료로 쓸 농축 우라늄 정도는 확보할 의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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