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나눈 세기의 ‘삼성 컬렉션’, 거인 품격을 그리며[기고/김홍남]

4 days ago 15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화여대 명예교수 현재 런던 영국박물관에서는 ‘이건희 회장 기증품 국외 순회전’의 마지막 여정이 한창이다.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를 거쳐 런던으로 이어진 이 전시는 뮤지엄마다 제목이 조금씩 다르다. 워싱턴은 수집과 기증의 정신에, 시카고는 국보 자체에, 런던은 한국인의 ‘창의성’에 주목했다. 이 다채로운 시선들이 관통하는 본질은 하나다. 삼성의 소장품에 담긴 나라 사랑, 그리고 한국인의 창의적 우수성에 대한 굳건한 자존감이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사에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천명했다. 이병철 창업회장이 호암미술관을 세운 지 22년 만의 일이었다. 대를 이은 미술품 수집은 단순한 호사가의 취미가 아니었다.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의 안목과 거장들의 작품을 망라한 세계적 컬렉션, 그리고 해외 저명 미술관의 한국실 조성 지원과 특별전 지원, 작가들의 해외 진출 후원까지, 삼성의 문화 사업은 언제나 한국 문화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는 격조 높은 외교였다. 여기에 당대 현대미술과 대학 박물관에 수혈된 지원, 그리고 한국 민간 차원 문화유산 보존의 효시가 된 ‘최순우 옛집’ 매입 등은 한국 문화 생태계를 풍요롭게 가꾼 소중한 자양분이었다. 최근 이재용 회장이 런던전 개막식에서 가문의 수집 목적이 ‘소유’가 아닌 ‘인류와의 나눔’에 있음을 재확인한 것은 이 위대한 정신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창업회장의 시대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본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격동기였다. 도쿄국립박물관을 비롯해 일찍이 문화의 힘을 산업과 결합했던 일본은 우리에게 학습 대상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경쟁 상대였다. 결국 그 염원은 이건희 회장 대에 이르러 반도체 세계 정상이라는 기적과 함께 실현되었다. 흥미롭게도 이건희 회장의 사업 철학 안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카라얀을 동경하던 그의 예술적 감수성과 창조적 인재에 대한 갈망이 맞닿아 있었다. 나는 메모리 반도체를 볼 때마다 나노 수준의 금속 기술과 종교 예술이 기막히게 조화된 ‘청동 다뉴세문경’, 그리고 세계 최고 품질로 명대 중국 문인들을 매료시켰던 ‘조선지(한지)’라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억 저장 장치(메모리)를 떠올린다. 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진정한 창조가 나온다는 진리를 이건희 회장은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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