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경계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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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위한 ‘4km 거리두기’ 중간선 70년 사이 흐릿해져 ‘그 언저리’化 남-북-유엔사, ‘제각각 MDL’ 주장 명확한 ‘선’ 다시 그어 화근 없애야 이철희 논설위원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6∼7월 판문점은 또 하나의 치열한 전장이었다.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기 위해 5만분의 1 축척 지도 위에서 피 말리는 협상을 벌였다. 양측이 기존 38선이 아닌 접촉선(교전선), 그것도 정전협정 조인 시점의 접촉선을 MDL로 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막판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참혹한 고지전이 집중된 시기였기에 양측 협상도 피가 튀는 전쟁터 못지않았다. 양측은 이미 1년 반 전에 MDL은 물론 남북 2km씩 물러선 비무장지대(DMZ) 경계선까지 반영한 지도를 가(假)조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사이 달라진 전황은 지도의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양측은 6월 중순 어렵사리 새로운 MDL 지도에 합의했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의 반공포로 석방에 반발한 공산군이 막판 대공세를 감행하면서 7월에 또다시 수정에 들어가야 했다. 시시각각 바뀌는 전황을 반영하려는 최후의 ‘지도 위 전투’였다. 그렇게 확정된 MDL을 따라 총 1292개의 표식물이 설치됐다. 처음엔 말뚝 사이를 잇는 가는 선도 곳곳에 있었다지만 이내 사라졌다. 말뚝도 풍화와 화재로 훼손돼 갔다. 그래도 정전 초기 20년가량은 유지·보수가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1973년 표식물 교체 작업 중 남측 인원이 북측 사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마저 중단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흐르면서 MDL 표식물은 이제 200개도 채 안 남았다. 그 간격이 멀어지면서 전방의 초병들이 정확한 MDL을 인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전협정 원본 지도가 남아 있지만 거기 그어진 MDL도 연필과 만년필로 덧칠된 선이다. 그 선의 굵기가 1mm라면 그것만으로도 실제 지형에선 50m에 달하는 오차가 생긴다. 게다가 MDL을 판별하는 좌표 기준도 다르다. 우리 군과 유엔사는 미국 위성항법장치(GPS)를, 북한은 러시아 위성항법체계(글로나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차가 클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우리 군과 유엔사 간에도 기준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각각 MDL을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약 60% 지점에서 불일치가 나타났고, 일부 지역에선 수십 m 차이가 난다. 결국 남과 북, 유엔사가 각자의 MDL을 토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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