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석방은 정치권에는 그야말로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오기 직전까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를 예상한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기 대선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여야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석방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 석방을 전후로 달라진 이 대표의 '스케줄표'만 보더라도, 급해진 민주당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이 대표는 대체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지난 2월 들어 이 대표는 일찍이 '사실상 대선 모드' 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 대표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연일 경제 행보를 걸었습니다. 윤 대통령 구속취소 이전 이 대표는 △AI 강국위원회 주관 토론회 △박형준 부산시장 면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한국경제인협회 민생경제간담회 △자동차 산업 현장 간담회 △조선산업·K-방산 비전 현장 간담회 △현대자동차 현장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대선 행보'라고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일정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이 대표의 일정은 윤 대통령 석방을 기점으로 '비상의원총회'와 '비상행동 집회'로 채워졌습니다. 아예 공개 일정이 없는 날도 늘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공직선거법 2심을 앞둔 이 대표의 '대선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이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이 대표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월 들어 부쩍 이 대표를 향해 비판의 수위를 높였던 비명계도 다시 숨을 죽였습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단식 농성을 하며 민주당의 여론전에 힘을 보탰고, 민주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 비판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장외 집회에 등장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1인 피켓시위에 나서는 등 힘을 실었습니다.
이 대표가 '2023년 자신의 체포동의안의 국회 가결은 비명계와 검찰이 내통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최고조에 달했던 계파 갈등이 일거에 '일시 소멸'한 셈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윤석열을 파면하라'로 카카오톡 등 프로필 사진을 단체로 바꾸는 등 부쩍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의원은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죠. 헌재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검사 3인방에 대해 만장일치 기각 판결을 내리며 '줄탄핵 역풍'에 대한 우려까지 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구속 취소와 헌재의 탄핵 판결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 대표의 달라진 일정과 야권의 분위기는 헌재 결정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헌재의 판결 전망에 대해 "오전엔 인용, 오후엔 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예상 불가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헌재는 결심 변론 이후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중 가장 긴 숙의 기간을 경신했지만, 아직 선고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합의 실종으로 '극단의 정치'를 이어온 여야 정치권은 당분간 숨죽인 채 헌재의 결정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