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尹 석방'에 조기 대선 모드 접었다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4 hours ago 1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전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이동석 사장(오른쪽)을 비롯한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0일 오전 충남 아산시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이동석 사장(오른쪽)을 비롯한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석방은 정치권에는 그야말로 '깜짝 이벤트'였습니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이 나오기 직전까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이를 예상한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기 대선을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여야는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석방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만사를 제쳐두고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 석방을 전후로 달라진 이 대표의 '스케줄표'만 보더라도, 급해진 민주당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이 대표는 대체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지난 2월 들어 이 대표는 일찍이 '사실상 대선 모드' 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이 대표는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연일 경제 행보를 걸었습니다. 윤 대통령 구속취소 이전 이 대표는 △AI 강국위원회 주관 토론회 △박형준 부산시장 면담 △경제 활성화를 위한 한국경제인협회 민생경제간담회 △자동차 산업 현장 간담회 △조선산업·K-방산 비전 현장 간담회 △현대자동차 현장간담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대선 행보'라고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일정들이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사진=뉴스1

그랬던 이 대표의 일정은 윤 대통령 석방을 기점으로 '비상의원총회'와 '비상행동 집회'로 채워졌습니다. 아예 공개 일정이 없는 날도 늘었습니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공직선거법 2심을 앞둔 이 대표의 '대선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이 탄핵 심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달라진 것은 이 대표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월 들어 부쩍 이 대표를 향해 비판의 수위를 높였던 비명계도 다시 숨을 죽였습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단식 농성을 하며 민주당의 여론전에 힘을 보탰고, 민주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 비판했던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장외 집회에 등장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1인 피켓시위에 나서는 등 힘을 실었습니다.

이 대표가 '2023년 자신의 체포동의안의 국회 가결은 비명계와 검찰이 내통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최고조에 달했던 계파 갈등이 일거에 '일시 소멸'한 셈입니다.

사진=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캡쳐

사진=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페이스북 캡쳐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윤석열을 파면하라'로 카카오톡 등 프로필 사진을 단체로 바꾸는 등 부쩍 '단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부 의원은 삭발을 감행하기도 했죠. 헌재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검사 3인방에 대해 만장일치 기각 판결을 내리며 '줄탄핵 역풍'에 대한 우려까지 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구속 취소와 헌재의 탄핵 판결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 대표의 달라진 일정과 야권의 분위기는 헌재 결정의 불확실성이 높아졌음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한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헌재의 판결 전망에 대해 "오전엔 인용, 오후엔 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예상 불가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헌재는 결심 변론 이후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중 가장 긴 숙의 기간을 경신했지만, 아직 선고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합의 실종으로 '극단의 정치'를 이어온 여야 정치권은 당분간 숨죽인 채 헌재의 결정만 바라보게 됐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