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살아 있을 때 이자람 공연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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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이자람이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자람은 오는 7일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공연에 나선다. /문덕관 사진작가

소리꾼 이자람이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자람은 오는 7일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공연에 나선다. /문덕관 사진작가

1984년 만 네 살에 꼬마 가수로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리꾼으로 단단히 자리 잡은 이자람을 최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오는 7일 톨스토이 단편소설 <주인과 하인>을 재해석한 창작 판소리 ‘눈, 눈, 눈’ 첫 공연을 앞뒀다.

“결국 둘 중 한 명이 죽게 되는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이렇게만 했어도 죽진 않았을 텐데 이런 선택을 했구나’ 하는 순간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프면서도 좋았어요. 제가 경험한 즐겁고 조금은 괴로운 여정을 관객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전작 ‘노인과 바다’의 흥행에 이어 이번에도 티켓은 순식간에 동났다. “갈 곳도, 돈 쓸데도 많잖아요. 그 돈을 제 작품에 써준다는 것 자체에 조금 놀랐어요. 늘 놀랍고, 늘 놀라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의 겸손한 태도에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나의 이름은 한국 판소리 역사에 아주 중요하게 남을 것이니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내 작품을 직접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나 이자람 공연 봤어! 나 이자람 살아 있을 때 객석에서 같이 추임새 했어!’ 하고 자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2022년 이자람의 첫 자전적 에세이 <오늘도 자람>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의 자신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자람은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판소리 5바탕을 완창한 것을 넘어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창작 판소리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모든 클래식 연주자가 직접 작곡하지 않듯 모든 소리꾼이 작창(판소리 장르 안에서 곡을 쓰는 일)하는 건 아니다. 작창의 바탕이 되는 대본을 쓰는 소리꾼도 드물다. 그는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대본을 쓸 줄 아는 작가가 여기 함께 있다는 게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자람은 어려서부터 ‘스토리텔링’이 좋았다. 아버지 이규대(혼성 듀오 ‘바블껌’ 멤버)와 함께 부른 동요 ‘내 이름(예솔아!)’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집에서는 혼자 동화책을 소리 내 읽으며 녹음하는 것을 즐겼다. 판소리는 우연한 기회로 접했다. 열 살 때 판소리를 배워 한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오프닝 무대에서 불러야 했는데, 이때 만난 고(故) 은희진 명창이 첫 스승이 됐다.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국립국악중·고를 거쳐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했다. 스무 살에는 춘향가를 8시간 동안 완창해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판소리에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이 ‘빡센’ 예술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컸어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이런 마음을 잘 다스려야 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창작 판소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고전 판소리가 지닌 구시대적 서사의 한계를 깨기 위한 도전이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창작 집단 ‘판소리만들기-자’를 결성해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극을 바탕으로 ‘사천가’(2007)와 ‘억척가’(2011)를 세상에 내놨다. 이 작품들로 30대 중반까지 세계 각지를 누볐다.

“제일 그리운 순간은 프랑스 리옹과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처럼 세 번 이상 간 곳들이에요. 제 공연과 성장을 계속 응원하고 봐주는 관객들이 있는 제2의 고향이죠. 세상에 어떤 운 좋은 사람이 그런 공연을 하고 다니겠어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계속 공연을 올리고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이자람이 생각하는 판소리의 매력은 뭘까. 수없이 받았을 질문일 텐데, 그는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는 듯 한참 고심한 뒤 답했다. “판소리는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고도의 예술이에요. 구도자처럼 끊임없이 정진해야만 얻는 기술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기술로 말하는 이야기가 오히려 나와 가장 가까워요. 엄청난 양극성이죠. 저 높은 곳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소리꾼이 내 옆에서 내 추임새를 들으며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나이가 들면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이자람은 낯선 환경에 자신을 끊임없이 내던졌다. 한때 라디오 DJ부터 밴드 보컬, 뮤지컬 배우까지 그 모든 걸 능숙하게 해내 ‘이잘함’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첫 경험을 하는 순간은 아주 귀하거든요. 배울 게 너무 많잖아요. 태도를 계속 바꿔야 하는 상황이 저를 깨어 있게 합니다.”

허세민 기자

이자람 "살아 있을 때 이자람 공연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이자람 인터뷰 전문과 다양한 화보는 ‘아르떼 매거진’ 11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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