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성리학적 사이비 근대국가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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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성리학적 사이비 근대국가의 저주

9월 1일 정기국회 개원일에 여당과 유사(類似) 여당 국회의원 등이 ‘국회의장의 제안’-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위해서라는 둥-에 따라 한복을 입었다. 도포에 갓까지 쓴 의원도 있었다. 고등학교 코스프레 졸업식 느낌 속에서 셀카를 찍으며 자기들끼리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민족의상 한복에는 죄가 없다. 열대야가 물러가지 않은 터에 설날이나 추석도 아니고, 정치인들 특유의 상투적 주접이라고 치부하기엔 문득 중국과 ‘조선’ 관계가 떠올라 음산하게 ‘상징적’이었다. 다음날 대한민국 국회의장은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러 갔다.

계승범 교수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2011)는 조선 선비(양반)에 대한 고매한 상식들이 ‘다각도로’ 거짓임을 밝힌다. 이 책에 한국 현실 정치에 대한 언급은 없다. 국사학계(세계사 속 역사학계가 아닌 ‘국뽕학계’)에서 쉬쉬하는 내용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데서 멈춘다. 한데 이후, 그런 조선 사림 양반들과 386운동권 정치의 공통점을 문제 삼는 책들이 여럿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만 예를 든다면 유성운 기자의 <586, 조선의 사림>(2021)이 있다.(나는 특별한 맥락이 아니라면 586보다는 386을 비평용어로 선택한다. ‘386’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역사적 질병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에는, 에드워드 와그너 교수(1924~2001)의 연구들과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일본 초판 1998, 한국어 번역 2017),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등의 영향이 저자들끼리의 개인적 소통과는 상관없이도 무의식적인 시대 요구의 흐름을 형성한다. 그것은 백성(근대국민이 아닌)의 절반 정도가 세계사 최악의 노예인 조선 안에서 군림하던 1~3% 미만의 특권층인 선비들의 본색을 통해, 386이 사회문제이고 386운동권 정치가 사회악이라는 현실 자각을 우리 지성계가 고지(告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위선’과 ‘조선’이고, 더 압축시키면 ‘계급’이 된다. 이 계급의 꼭대기에 앉아 거짓 민주와 거짓 평등으로 공화주의를 파괴하며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저 정치인들도, 가끔 본심이 ‘사소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자신처럼 용이 아닌 가재·게·붕어·개구리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살아야 한다, 양반제는 양반이 폐지해야 설득력이 있으니 나 같은 양반이 (내 자식은 특목고 졸업시킨 뒤에) 특목고를 폐지해야 한다, 재개발로 좋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 표심이 보수화되니까 낡고 가난한 도시를 유지해야 한다 등등. 저들은 정당(政黨) 여성 취업 지원자를 술집으로 불러내 성추행하며 면접을 보고는, 폭로되니, 이렇게 말한다. “그까짓 게 무슨 죽을 일이냐!” 그런데도 어떤 여성들은 저들을 정의롭다고 한다.

이 ‘진보 앵벌이’의 가스라이팅 구조는 ‘설계된 문화’다. 내가 믿는 그것이 그것이 아니고, 내가 따르는 그가 그가 아님을 알게 된다고 한들, 이미 삶의 거의 전부가 소진된 뒤일 수 있다. 게다가 이 어리석음을 전파하고 공고히 하는 더 큰 죄까지 저지른다. 한데, 이것이 조선의 노예제도보다 더 ‘저주’스러운 것은, 저들의 노비이면서도 자신이 저들과 똑같은 계급(양반)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전승절은 중국(중공)이 일제를 패망시킨 걸 자랑하는 행사다. 그러나 일본과 싸운 것은 주로(거의 다) 중화민국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였지, 1947년에야 인민해방군으로 수렴(收斂)되는 홍군 등 마오쩌둥의 공산당 무력(武力)이 아니었다.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의 항복문서를 받아낸 연합군 측은 미국, 중화민국, 영국, 소련, 호주,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였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1949년에야 건국된다.

전승절을 선전에 오용하는 건 시진핑 때부터다. 9월 3일, 천안문 망루로 걸어가는 도중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시진핑과 푸틴은 장기이식과 장생불사(長生不死) 얘기를 나눴다. 이런 사람들은 조선의 양반이건 386운동권 정치건 뭐건 DNA가 똑같다. 지금 네팔에서는, 거짓과 위선에 더는 속지 않는 민중이 봉기해 ‘네팔 공산당’ 종중 정권을 붕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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