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한 커뮤니티에 독특한 캐릭터 이미지가 올라왔다. 2003년 방영된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에 등장하는 분홍색 비버 루피의 눈꼬리와 입꼬리가 과하게 올라가 있는 사진이었다.
'군침이 싹(군싹)' 돈다는 설명과 이어지며 각종 SNS를 통해 밈(Meme)으로 성장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로봇청소기를 비롯해 밥솥, 음식, 문구, 화장품 등 여러 산업에서 광고 협업이 이뤄지며 루피는 '잔망루피'라는 새 이름으로 MZ세대의 인기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얄밉도록 맹랑한 데가 있다'는 의미의 잔망스러움이 루피의 특징으로 거듭나는 건 개발자들에게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요리를 좋아하고 소심한 면모가 있는 기존의 이미지와 괴리감이 컸기 때문이다.
뽀로로를 제작한 아이코닉스의 최종일 대표는 "루피가 잔망루피로 거듭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영유아층을 넘어 다양한 세대가 뽀로로를 소비할 수 있는 계기가 돼 감사히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감없이 속마음 털어내는 잔망루피
초점 잃은 눈동자의 잔망루피는 마음에 담아둘 법한 얘기들을 가감 없이 풀어내는 게 특징이다. 누군가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처럼 입 주변을 모자이크로 처리하거나 회사에서 쌓인 불평들을 당당하게 말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잔망루피의 선풍적인 인기에도 아이코닉스 내부의 초기 평가는 엇갈렸다. 기존 루피의 지식재산권(IP)을 해칠 수 있다는 일부 우려에서다. 하지만 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어린 시절 뽀로로를 보면서 성장한 세대가 자연스레 콘텐츠를 소비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라며 "오히려 아이코닉스가 적극 나서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잔망루피가 여러 방면에서 주목받는 2차 창작물로 거듭난 뒷배경이다. 실제로 2020년 아이코닉스는 잔망루피의 공식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선보였다. 현재까지 14가지의 종류가 나온 이래 줄곧 카카오톡 인기 이모티콘 순위에서 톱10 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중국 회사 '조이 나이스 게임즈'가 만든 모바일 게임 '버섯커 키우기'와 협업해 인게임 캐릭터를 출시했다. 아이코닉스는 홍보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전담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중국 글로벌 완구 기업 팝마트의 매장에서 잔망루피가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로 주목받기도 했다"며 "국내를 넘어 글로벌에서도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잔망루피 잇는다…"청소년 애니메이션도 제작 중"
제2의 잔망루피가 등장할 수 있도록 회사 차원에서 기술 개발도 적극 이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업 인쇼츠와 협업해 기존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화질을 고화질(4K)로 개선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AI 스타트업 허드슨에이아이는 지난달 26일 아이코닉스와 협업해 애니메이션에 AI 다국어 자막을 지원하는 기능을 제공할 예정이다.
기존 IP를 활용한 2차 창작물도 만들고 있다. 2020년에는 여자 아이돌 오마이걸의 노래 '바나나알러지 원숭이'를 재창조한 동명 곡을 뽀로로 캐릭터들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지난달 6일에는 앞서 제작한 동요 '바라밤'을 여러 뽀로로 캐릭터의 목소리로 담아 앨범으로 내놓기도 했다.
최 대표는 "기존 동요와는 다른 느낌을 녹여 내 K팝을 이은 K동요를 만들어보겠다는 취지"라며 "아이코닉스의 강점인 스토리텔링 능력을 살려 융복합 콘텐츠를 앞으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계획에 대해서도 "청소년층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빠르면 올여름께 공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