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헬스장 1년 회원권이 만료됐거든요. 요즘 축의금 나갈 곳도 많고 돈 아껴야겠다 싶어서 헬스장 대신 왔어요."
14일 서울 중랑구 망우역 인근 봉화산 '산스장'에서 만난 김 모씨(28)는 이곳에서 운동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산스장'은 산 속 헬스장을 일컫는 말이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시민들의 여가 생활에 대한 소비 지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시민들이 헬스장 대신 산스장을 즐겨 찾고 있다. 서울 봉화산, 인왕산 인근 산스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돈도 안 들고 기구도 신식인데 뭐하러 헬스장을 가냐"며 산스장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했다.
◆'산스장' 인기…"돈 안 들고 기구도 다양해"
봉화산은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운동 시설이 잘 갖춰진 산으로 유명하다. 봉화산 등산객들은 백팩을 매고 둘레길을 오르는 기자에게 "학생, 여기 헬스장 되게 좋아. 책가방 내려놓고 운동하고 가"라며 자랑했다.
20분께 둘레길을 오르자 나타난 봉화산 산스장엔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용객들이 있었다. 시민들은 산스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 △헬스장 가격이 비싸서 △헬스장의 시설이 불만족스러워서 등 이유를 들었다. 이들은 돈 들이지 않고도 충분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산스장을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대흉근을 키울 수 있는 운동 기구 '체스트 프레스'를 하던 60대 이용객 김 씨는 "나이가 들면 근력 운동이 필수라고 해서 헬스장을 갔었는데 지하에 있어서 해도 안 들어왔다"며 "요즘은 이렇게 야외에서 햇볕 쬐면서 운동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등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운동 기구 '랫 풀 다운'을 하다가 휴식하던 40대 이용객 A씨도 "돈 안 들이고 건강을 챙길 수 있는데 안 올 이유가 없다"며 "내가 헬스장에서 썼던 기구들 대부분이 여기에 있어서 이제 돈 내고 헬스장 못 가겠다"고 설명했다.
운동을 마친 뒤 땀을 식히며 외부 벤치에 앉아있던 대학생 커플 김소은(21)씨와 이태훈(23)씨는 산스장 방문 이유에 대해 "우리는 운동 데이트를 즐기는데 헬스장 일일권을 끊으면 거의 2~3만원 하지 않냐"며 "돈도 아낄 겸 서울의 유명한 산스장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 봉화산 말고도 서대문구 백련산 산스장, 종로구 사직공원 산스장도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손꼽히는 산스장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 인왕산 인근 사직공원 체육시설에서 만난 시민들도 비슷한 이유로 산스장을 찾고 있었다. 대학교 동기들과 운동하러 왔다는 한양대 재학생 김 모씨(21)는 "지방에서 올라와서 자취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최대한 취미 생활에서는 돈을 아끼고 있다"며 "그래도 서울이 지방에 비해 무료 체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자주 올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산스장에 구비된 운동기구들이 사설 헬스장 못지않게 좋다고 강조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헬스장에 비해 시설 관리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지만, 기구의 다양성과 실용성은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인왕산 인근 산스장을 담당하는 종로구청 도시녹지과 관계자는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분들이 무료로 운동하실 수 있도록 2022년에 산스장을 설치하게 됐다"며 "주민들의 반응은 아주 열광적이다"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처음에는 야외 부지에 낡은 운동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를 새 기구로 교체하는 데 약 3300만 원이 들었다"며 "그 이후에는 공무원들이 하루 두 차례 청소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리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스장 폐업 수 역대 최대…"대체재 확실하기 때문"
여가 생활에 대한 시민들의 소비 지출이 줄고 무료 운동 시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최근 폐업하는 헬스장 수는 크게 증가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폐업한 헬스장은 전년보다 26.8% 증가한 553곳에 달했다. 이는 역대 최고수치로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90년 이래 가장 많았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이 헬스장 폐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여가 활동에 쓴 비용은 월평균 18만7000원으로 전년(20만1000원) 대비 1만4000원 줄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시민들이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해 지출하는 소비인 '자유 재량적 소비' 항목 지출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오락비나 체력 단련비 등 굳이 필수재가 아닌 부분은 물가 상승에 부담을 느낀 시민들이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이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서울은 특히 산이 많은 곳이고 행정 기관에서도 점점 예산을 많이 들이면서 산속에 시민들을 위한 편의 시설을 많이 짓고 있다"며 "산스장은 헬스장의 확실한 대체재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굳이 헬스장 회원권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일부 시민들은 실내 운동보다 실외에서 운동하는 것에 더 이점을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