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기자님 안녕하세요. 배우 박정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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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 박정민 대표. (사진=출판사 무제) |
눈을 의심하게 하는 보도자료 메일 제목이었다. 영화 ‘파수꾼’,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박정민이 보낸 메일이었다. 제목은 ‘배우’로 시작했지만, 메일 내용은 책에 대한 것이었다. ‘출판사 무제’의 박정민 대표가 출간 예정인 김금희 작가의 소설 ‘첫 여름, 완주’를 소개하고 있었다.
몇 주 뒤 ‘출판사 무제의 박정민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더 도착했다. ‘첫 여름, 완주’가 종이책으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담고 있었다. 대중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배우가 출판사 대표로 직접 보도자료 메일을 작성해 보낸 이유가 궁금했다. 출판사 대표로 변신한 박정민을 13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출판사 대표로 직접 보도자료 메일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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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의 첫 번째 책 ‘살리는 일’(왼쪽), 두 번째 책 ‘자매일기’ 표지. (사진=출판사 무제) |
박정민과 책은 가까운 사이였다. 2016년 산문집 ‘쓸 만한 인간’으로 작가로 데뷔했다. 2019~2021년 서울 홍대 근처에서 서점 ‘책과 밤낮’을 운영하기도 했다. 출판사 무제를 설립한 건 2020년이었다. 박정민은 “책방을 하는 와중에 별생각 없이 출판사를 만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며 “출판사가 여기까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출판사 무제는 그간 동물권에 대한 에세이 ‘살리는 일’(2020년),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 ‘자매일기’(2024년) 등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이번이 세 번째 책이다. 이름은 말 그대로 ‘제목 없음’(無題)을 뜻한다. 박정민은 출판사 무제의 정체성을 “이름이 없는 것, 소외된 존재들을 꾸준히 들여다보는 것”에서 찾았다. 그는 “에세이 ‘살리는 일’을 통해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어딘가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작가의 글을 본 뒤 ‘무제’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염정아·고민시 등 오디오북 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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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의 세 번째 책 ‘첫 여름, 완주’ 표지. (사진=출판사 무제) |
최근 출간한 ‘첫 여름, 완주’는 출판사 무제가 새로 선보이는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다. ‘듣는 소설’은 이름 그대로 종이책보다 오디오 북을 먼저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박정민은 5년 전 시력을 잃은 아버지도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민한 끝에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금희 작가의 팬인 박정민은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주인공으로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김금희 작가도 박정민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오디오 북은 염정아, 고민시, 최양락 등 쟁쟁한 스타들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박정민은 “(섭외 때문에) 거의 2주 동안 혼자 끙끙 앓았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 고민시 배우에게 먼저 연락했는데 참여하겠다는 답을 받았다”며 “(염)정아 선배는 ‘정민이가 하는 거니까 해야지’라고 해주셨다.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호의를 베풀어줘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제작 뒷얘기를 들려줬다.
‘듣는 소설’ 프로젝트와 ‘첫 여름, 완주’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도 궁금했다. 박정민은 “아버지는 ‘재밌다’고 하셨다”면서도 “하지만 책보다 출판사 운영과 자금 관리, 직원 고용, 책 판매 등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이신다.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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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 박정민 대표. (사진=출판사 무제) |
오는 6월에는 서울국제도서전 기간에 맞춰 신간을 출간할 예정이다. 박정민은 “우연히 찾아낸 가슴 뜨거운 글을 담은 에세이”라고 소개했다. 출판사 무제를 통해 작가로서 새 책도 준비 중이다. 그는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좋은 글감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는 쓸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지만, 박정민이 책과 가까워진 것은 성인이 된 뒤였다. 그는 “학창시절엔 책과 동떨어져 있는 학생이었다”면서 “촬영이 있는 날에는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어 쉬는 날 조금씩 읽는 편이다. 엄청난 다독가도 아니고 애호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박정민은 “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와 되새길만한 문장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며 “모든 이야기와 문장이 제 삶으로 침투해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제 삶과 맞닿는 것을 발견하기에 꾸준히 조금씩 읽고 있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무제는 현재 박정민과 직원 1명 등 총 2명이 운영하고 있다. 박정민은 “한 권의 책을 외주 없이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