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사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 비공개로 진행돼 온 주요 국립예술단체장 선발 과정이 투명하게 바뀐다. 또 중장기로 이뤄지는 공연·전시 기획의 특성을 고려해 단체장 임기 만료 1년 전부터 후임자 선임 절차를 시작하는 ‘사전 선임제도’도 새롭게 도입된다.
다만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민감한 인사 정책을 개편하는 것을 두고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인사 투명성을 높이는 취지인 만큼, 차기 정부도 공감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15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개 모집, 공개 검증, 사전 선임을 골자로 한 ‘공연예술 정책’을 발표했다. 용 차관은 “국립예술단체장 선발 과정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역할 수행을 위한 준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인선 절차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예술단체장 공개오디션…“검증 확실하게”
우선 주요 단체장 선발을 오디션 형식으로 바꾼다. 그간 국립예술단체장 인선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던 데다, 선임 과정이 비공개로 이뤄져 절차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공연계의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용 차관은 “단체장 선임 과정을 궁금해하거나, 그 배경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공개 모집을 통해 이런 문제들이 사전에 걸러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립국악원장 선임을 두고 벌어진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전임 김영운 원장의 퇴임 후 반년 이상 공석이던 국악원장 자리에 올해 초 유병채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이 내정됐단 소식이 들리자 국악계가 반발한 것. 국악계는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의 관료를 임명하는 것을 ‘알박기’라 규정하고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악원장은 대통령령 개정으로 행정직 공무원도 지원 가능한 인사혁신처 주관의 개방형 직위라 ‘밀실 인선’과 큰 관련이 없지만, 그간 쌓인 국립예술단체장 선임에 대한 불신이 논란을 키웠다는 게 문화계의 진단이다.
공개 모집과 함께 공개 검증을 진행키로 한 것도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문체부의 설명이다. 문체부는 공개된 선발 과정에 참여한 후보자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공개검증위원단 앞에서 중장기 비전과 운영계획을 발표하고, 예술적 역량을 증명하는 자리를 마련할 방침이다. 용 차관은 “단체별, 분야별, 역할별로 요구되는 역량에 따라 세부 평가 방식과 평가지표는 직위별로 다르게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 선임, 한 해 농사 미리 준비”
공개모집과 함께 문체부가 강조하는 인사 개편의 핵심은 사전 선임제도다. 단체장의 임기 만료 약 1년 전부터 후임자 선임 절차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후임자가 임기 개시 최소 6개월 전부터 미리 단체 운영을 준비하고, 세부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용 차관은 “후임자가 공식 임기 전에 미리 공연계획을 준비할 수 있게 돼 효율적인 단체 운영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발과 임기 시작이 동시에 이뤄지는 현재 구조로는 신임 단체장의 역량 발휘가 제한되고, 단체 경쟁력도 저하된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공연이나 무용 등 국립예술단체의 경우 통상 1~2년 전부터 연간 공연계획을 세운다. 공연기획부터 연습 등 공연 준비에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고, 해외 예술단체 초청을 위한 사전 조율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공연계획은 단체장이나 예술감독의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이 자리의 공석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코앞인데 왜?…“다음 정부도 공감할 것”
이번 개편안은 현재 단체장의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인 12개 예술단체에 우선 적용한다.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는 예술의전당 사장, 국립정동극장 대표, 국립오페라단 단장 겸 예술감독,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국립어린이청소년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비롯해 소속 기관장이 임명하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예술감독,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등이다. 인사혁신처가 주관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립국악원장과 국립극장장은 제외된다.
다만 문화계 일각에선 문체부의 다소 갑작스러운 인사 정책 개편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차기 정부 문화정책의 방향성에 따라 정책이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현장에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선을 3주가량 앞둔 시점에서 정책을 내놓는 것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체부는 대선 이후인 6월 중 12개 국립예술단체에 대한 단체장 통합공모를 진행키로 결정한 만큼, 정책 발표 시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용 차관은 “예술계에 누적됐던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 것”이라며 “(문화정책이) 정치권력 변화에 좌우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어서 발표 시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