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곳곳의 지식산업센터가 텅 빈 ‘유령 건물’이 되고 있다. 공실 문제로 투자자와 시행사가 자금난을 겪는 것뿐만 아니라 방치된 건물은 지역사회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추가 공급 물량도 적지 않아 부실이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전국에서 준공된 지식산업센터는 1066곳(연면적 7029만㎡)에 이른다. 이 중 40%가량이 공실로 남아 있다. 인허가 후 삽을 뜨지 못한 물량도 수도권에만 126곳(연면적 736만㎡)이다.
수익형 부동산인 지식산업센터는 규제가 적고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부동산시장 호황기에 수도권에 대거 공급됐다. 하지만 고금리와 경기 침체 여파로 공실이 부쩍 늘었다. 경기 포천의 한 지식산업센터는 전체 687실 중 74%(508실)가 공실이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 내 지식산업센터(연면적 8만5302㎡)는 준공 1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비어 있다.
업계에서는 입주 업종 제한을 풀고, 50% 수준인 담보인정비율(LTV)을 80%대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홍 지식산업센터연합회 사무국장은 “자족시설이 될 수 있도록 입주 업종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에…골칫거리로 전락한 지식산업센터
수도권 곳곳에 '공실 무덤'…수요 이끌어낼 '당근' 필요
“서울 금천구 A지식산업센터는 분양 실적이 저조해 임대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텅 비어 있습니다. 건물 통매각도 안 되고 공실 해결책이 없습니다.”(상업용 부동산 업체 임원 B씨)
지난 12일 찾은 A지식산업센터 보행로 곳곳에는 ‘분양 상담 고객 외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의 분양 실적은 1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공업지역에 있지만 다른 수도권 지식산업센터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공실 문제를 겪고 있다.
수익형 부동산으로 한때 큰 인기를 끈 지식산업센터가 미분양 증가와 공실 등으로 지역사회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서울 도심과 경기 택지개발지구 등에서 과잉 공급 문제로 갈수록 부실이 커지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앵커기업(거점기업)을 유치하거나 지식산업센터 부지를 입주 희망 기업에 직접 매각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공실 쌓이니 거래도 ‘꽁꽁’
지식산업센터 실거래가 플랫폼 지식산업센터114에 따르면 작년에 준공한 경기 양주 지식산업센터 5곳(연면적 22만2917㎡)의 잔금 납부율(지난 5월 말 기준)은 26.7%다. 인천(37.4%)과 시흥(38.0%)도 절반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공급량이 많았던 서울 금천구(67.1%)도 잔금의 30%가량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 잔금 납부율은 공실률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잔금을 치르지 못한 사무실은 실사용과 임대 모두 불가능해 공실로 남기 때문이다.
양주 옥정신도시의 한 지식산업센터(잔금 납부율 13.6%)는 전체 243실(상가 포함) 중 11실만 임차 계약을 맺었다. 그마저도 실제 입주한 곳은 5실 남짓이다. 경기도가 명재성 의원(경기도의회)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6월까지 경기에 공급(준공)된 지식산업센터는 594곳, 15만5184실이다. 이 중 18%(2만5942실)가 공실인 것으로 파악됐다. 포천(74%) 이천(70%) 양주(64%) 등은 공실률이 더 높았다.
장기 공실에 따른 임대료 하락,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거래도 급감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11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에서 거래된 지식산업센터는 1042건, 4676억원 규모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4.5%, 27.4% 감소했다. 호황기이던 2021년 4분기(9436억원)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택지개발지구 내 미분양 할인, 마이너스 프리미엄 거래 등으로 매매가격도 크게 떨어졌다. 경기도는 거래액이 18%(2752억원→2265억원), 평균 단가는 6%(1215만원→1139만원) 줄었다.
◇골칫덩이로 전락한 지식산업센터
1990년대 아파트형 공장에서 시작된 지식산업센터는 2021~2022년 아파트 대출·세금 규제를 피해 뭉칫돈이 대거 유입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저금리 시대 ‘은퇴 후 월급통장’으로 입소문을 탔다. 너도나도 지식산업센터 분양에 뛰어들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공급이 늘며 미분양·공실 문제가 발생했다. 위기를 느낀 은행이 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면서 제때 중도금과 잔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투자자가 속출했다.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된 배경이다.
베드타운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신도시와 택지개발지구에서 자족·도시지원시설인 지식산업센터가 속속 들어섰다. 양주(옥정·회천)신도시는 도시지원시설 용지가 전체 토지의 3.6%를 차지한다. 상업·복합·업무시설 용지(2.8%)보다 높은 수준이다.
최근 업계에선 미착공 지식산업센터 부지에 주택을 공급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시장 호황기 때 민간에서 택지를 사들여 지식산업센터를 과도하게 지었다”며 “3기 신도시에서는 기업에 직접 토지를 분양하거나 앵커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기업 수요를 끌어낼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지훈 알이파트너(지식산업센터114) 대표는 “규모가 큰 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 대안”이라며 “기업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연구비 지원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주·고양=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